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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게 달리기
  • 에브리맨
  • 필립 로스
  • 11,700원 (10%650)
  • 2009-10-15
  • : 7,324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에브리맨>


최근 노화와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시아버지는 76세에 접어들었지만 매일 새벽 5시반에 기상하여,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산을 오른다. 두시간쯤 되는 시간을 산에서 보내고,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다시 집을 나선다.

일명 '콜라텍'으로 불리는(내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콜라텍이 아니라 어르신들을 위한 전용 카바레 같은 곳) 무도회장에 가서 춤을 추신다. 실제로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매점 비슷한 곳에서 음식과 술을 팔기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기 보다는 주로 또래의 여성들과 함께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공간이라고 하셨다. 자율에 맡긴 춤이 아니라 정해진 스텝이 있고, 파트너와 함께 해야 하기때문에 때론 레슨을 받기도 한다고 하셨다.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서울 청량리 같은 곳으로 원정을 가시거나 거꾸로 천안같은 곳으로 나가는 일도 있다고 하셨다. 주로 역 근처에는 이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음식점이 많기 때문에 근처에서 국밥을 드시거나 짜장면 등을 드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다.


다시 저녁에는 여자친구 분 댁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시고는 9시쯤 일찍 잠자리에 드신다.


골프를 즐겨 하시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어번은 골프 약속도 잡으신다. 


배우자의 죽음 뒤, 은퇴 이후의 삶을 저토록 홀로 잘 즐길 수 있다면 비교적 훌륭한 노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아버님이 최근 부쩍 전화를 자주하셔서는 "다리에 힘이없다" "왜인지 입맛이 없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져서 산에 가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물론 병원에서는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일련의 노화의 과정인 것이다.


늘 쌩쌩하기만 했던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부쩍 짜증이 많아지셨다. 그리고 자꾸 왜그런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반복하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니요. 그냥 늙어가는 과정이에요 아버님.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은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시종일관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버리는 것에 대해 걱정하던 그는 정작 한번뿐인 자기의 삶 속에서는 진지하지 못하다.

아니, 이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너무나 자신의 현재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지키고, 의무를 다한 삶이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로부터 도망쳤고, 도망칠 수 있었다.


훗날 버려진(확실히 버려진 것이다) 두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두 아들은 결연히 용서하지 않는다. 물론 이 에피소드가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섰다.

일방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한 폭력을 성인이 된 자식이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가? 본인은 본인의 삶을 후련하게 잘 살고 나서 청하는 화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

육체가 노화되는 것에 대해,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두려움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어차피 죽음은 다가오는 것이기에

현재의 삶을 더 단단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혹, 그렇지 않은 삶을 산 채 죽음을 맞이 한다면 할 수 없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오래전에 한번 읽고,

마흔이 넘어 다시 읽는 <에브리맨>은 뭔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이기심과 무책임함으로 버려진 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몇 줄의 언급 만으로 지나간 그들의 그간의 인생이 불쌍했다.


본인이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부릴 수 있는 그들의 이기심에 진저리가 났다.


죽음은,

다가오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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