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이라는 나라는 특히, 리스본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또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번도 가본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가 볼 일이 없겠지만 도시의 구석구석, 음식 냄새, 눈이 오고 비가 온 뒤의 도시의 분위기까지 막연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소설이 주는 어떤 힘 때문일 것이다.
페레이라는 살리자르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친정부 성향의 신문 <리스보아>의 문화면을 담당하는 기자이다.
날마다 사별한 아내의 사진 앞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고, 정치와는 무관하게 프랑스 문학을 번역하여 신문에 실으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크게 좋을 것도, 그렇다고 크게 나쁠 것도 없는 인생이다.
어쩌면 이미 흘러가버렸기에,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에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과거와 함께 계속 살았다면 페레이라의 삶은 더 안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듯이,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의 앞에 몬테이루 로시가 나타난다.
아니다. 어쩌면 그가 몬테이루 로시를 발견해낸 것이다.
잡지에서 그가 쓴 죽음에 관한 글이 마음에 들어 그를 작가들의 사망기사를 미리 써줄 수습 기자를 채용한 것인데, 사실 그 글은 그가 쓴 것이 아니라 베껴 쓴 것임을 알고 난 후에도 그를 자르지 못한 것을 보면, 로시라는 청년은 페레이라의 앞에 그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페레이라가 스스로 발견해 낸 것이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로시를 만난 후 페레이라는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가지 못한다.
페레이라는 점차 로시가 하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문학만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일 뿐, 나 하나의 생각이나 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점차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지난 날의 삶에 작별을 고하고, 현재를 살고 미래와 교제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는 의사의 조언도 점차 들리기 시작한다.
페레이라는 달라졌다.
로시를 만나 달라진 페레이라는 다시는 어제의 페레이라로 돌아가지 못한다.
스페인 인민정부를 위해 활동하다 경찰에 쫓기게 된 로시를 숨겨주고,
로시를 뒤쫓던 무법자들이 로시를 끝내 고문끝에 숨지게 하자
페레이라는 로시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고발하는 폭로기사를 내고
해외로 도피한다.
아마 페레이라의 남은 생은,
용기있게 진실을 밝히고,
또 그로인해 밝혀진 진실이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세상이 하 수선하여 자꾸만 소설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요즘이다.
문학만이 위로가 되고, 문학만이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꾸만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으로 부터 멀어지고만 싶을 때, 다시 한번 만난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현재를 살과 미래와 조우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워도 현실을 직시하는 눈과 진실을 밝히는 입들이 많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