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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게 달리기














이것을 리뷰로 봐야하는 것인지 일상으로 봐야하는것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일상으로 분류했다.


이번 주말은 연휴였으므로, 오래도록 끌고 있었던 책들을 정독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 중에서 읽으려면 집중이 필요한 <비폭력의 힘>을 먼저 꺼내들었다.


인문학 서적들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등만 봐도 왠지 지적 허영심이 차오르고,

그것을 읽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구간 구간이 너무 많고,(순전히 재미로 놓고 보자면)

아무리 내 자신을 다잡고, 끌고 가더라도, 나 자신의 무식이 너무 깊어 

당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를 계속 몇 페이지나 읽고 있으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많은 경우,

별다른 설명 없이(아니면 작고 긴 각주로 대강 설명하고), 마치 이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 듯이 본인의 논지를 계속 이어가면 어느새 나는 소외당하고 만다.

하지만 도태되기 싫어, 나도 알고 싶어, 하는 심정으로 기어코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읽어낸 많은 인문학 서적들의 반도 다 이해하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읽어낸 인문학 서적이 무슨 내용인지 우리 아들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면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길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비폭력의 힘>을 읽었다.

그래도 주디스 버틀러는 비교적 잘 읽히고,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말에 2호기 녀석이 친구들과 피씨방을 갔다가 노래방을 갔다가 고기 부페를 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것도 화가 났지만, 노래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바로 카톡으로 대답을 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이 새끼가 안 맞아봐서 그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라는 소리가 나왔다.


<비폭력의 힘>을 읽으면서, "맞아야 정신차리지!"라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자니 또 한번 자괴감이 몰려 왔다.


맞아야 하는 짓은 과연 무슨 짓일까.

어디까지가 맞을 짓이고, 또 어디까지가 맞지 않을 짓인가.

내가 낳았다고, 나한테 때릴 권리까지 있는 것일까.

이번에 때리면,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많이 때려야 되는 건 아닐까?

때리면, 정말 말을 잘 듣는 걸까?

말을 잘 듣는 다는건 어떤 상태인가? 아이가 행복한가? 내가 행복한가?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염려된다고 하면서 그냥 내 말에 고분고분한 자식을 원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는다면, 언제까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걸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너는 언제 너 알아서 살래?"라면서 혼자서도 잘 하라고 강요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부모가 처음이라,

또 아이도 사춘기가 처음이라

모두가 혼란스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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