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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아는 고양이

사소한 불운이 이어져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유리컵을 깨뜨린다든지, 외출을 준비하는데 단추가 떨어진다든지, 차를 빼다가 잠깐 사이에 기둥을 긁는다든지, 한꺼번에 두 군데 이상이 아프다든지, 열쇠를 잃어버리는 일. 하나씩 일어나면 액땜이려니 여유 있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달아 또는 동시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이 생긴다. 나쁜 일이 생기려나 봐. 그런 운이라는 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액땜'이라는 말로 얼버부리는 것도 결국 내가 운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행운을 기대하는 마음이나 불운을 걱정하는 마음은 닮았다. 운수가 트인다고 의기양양 하다가도 금세 어깨가 움츠러드는 내가 참 한심하다고 바로 오늘 아침에도 생각했다.


도미니크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멋지다. 도미니크가 누구냐면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늘 무슨 일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개"다. 치솟는 모험심을 채우기 위해 이제 막 고향을 떠난 도미니크 앞에 점쟁이 악어 할멈이 나타나서는 운수를 봐주겠다고 한다. 도미니크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겠다면서도 앞날의 운수는 보지 않겠다고 단호히 사양한다. 그리고 모험이 기다리는 어두컴컴한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도미니크가 선량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용맹하게 악당에 맞서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것은 사실 전형적인 동화의 줄거리다. 그렇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솜씨는 조금도 전형적이지 않다. 도미니크가 "새로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코가 바짝 긴장되고 환희에 차서" 부르르 떨며 '냄새들의 음악회'를 즐기는 모습이나(그는 냄새로 심지어 마을의 역사와 과거 선생의 월급, 당시의 밀감 값, 현재의 출생률도 알아낸다) 흥분했을 때 참지 못하고 컹컹 짖는 모습은 개의 특성과 딱 맞아서 읽는 내내 웃게 된다. 이발소에서 귀와 주둥이에 뜨거운 수건을 얹는 대목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 호쾌한 영웅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나처럼 째째한 사람도 등을 쭉 펴게 된다. 그래, 운이랄 게 별거 있겠어? 그때 그때 닥치는 일들 잘 해내가면 되지. 깨진 컵 조각 잘 치우고, 단추를 새로 달고, 운전 조심하고, 열쇠는 새로 맞추면 된다. 아플 땐 쉬어 가고, 이참에 운동도 열심히 하기로 하자. 이러다 또 운에 기대어 기분이 오르내리는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로도 괜찮다. 동화책을 읽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무엇이든 배우게 되고, 그것으로 또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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