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의 좌석수는 언제부터인지 열당 하나가 줄어서 넓고 쾌적해졌는데 그때문인지 아니면 좋아진 교툥상황 덕분인지 휴게소 정차가 줄어든 듯하여 여간 아쉽지 않았다. 다른 어떤이는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있어 좋다,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행을 시작하는 길이어서 휴게소의 공기마저도 여행의 기대였기 때문이다. 찌뿌드한 몸을 사방육방으로으로 뻗으며 휴게소 화장실을 찾고, 뭐 맛있는 거 없나 살피는 여행객의 모습을 그리면서...
휴게소의 통감자는 계획이랄 것도 없는 당연한 먹거리였고 그 작은 몇 알 감자에 배가 불러 매번 맛도 못보는 핫바며 오징어 따위의 군것질 거리는 눈으로 코로 먹을 참이었다.
삼등삼등 달리는 내 마음은 차창 밖 휴게소에 자꾸 눈길이 가는데 씽씽~ 최신형 버스는 별로 쉴 필요가 없었는지 휴게소란 휴게소는 다 지나쳐간다.
야간 버스라 고속도로에 간간히 나타나는 휴게소의 불빛은 더욱 화려했다.
남부터미널에서 진주까지 세시간 삽십분. 통영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친 우리는 통영에서 멀지 않않은 진주행 마지막 차를 가까스로 탔다.
"형님, 어쩐지 진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인걸요"
신나하는 종률이는 동행이다. 예정에 없던 하지만 이제는 영락없이 짝궁이 된 종률이는 마냥 들떠있었다. 혼자가는 여행이라며 일정이며 장비, 또 마음 준비도 단단히 했었는데 어쩐지 김빠지는 내마음을 종률이 너는 모를테지,.
여튼 여행은 시작 되었고 우리는 여행을 가는 길이다.
종률이가 매고있는 배낭은 내 것이었고 그 안에 장비도 침낭을 빼곤 다 내 것이었다. 내가 매고 있는 100리터자리 대형 배낭에는 텐트며 그외 잡다한 장비가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처음 비박(야영)을 가는 종률이를 위한 짐이었다. 종률이로 인해 짐이 많아졌지만 그보다 종률이가 내게 짐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한 번이면 족하고 이제는 그저 즐거울 방법밖에 도리가 없으니 즐겁게즐겁게... 뭐 적적하지 않아 좋기도 했으니 특별한 짐인 종률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싫었던 것만은 아니고다.
진주에 도착한 건 세벽 세시경이었는데 통영으로 점프하려는 우리는 찬 대합실에서 일곱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와~ 형님. 진짜 대박인데요. 처음부터 아주 지대로 여행이네요 형님!,
뭐가그리 신났는지 자다깨자마자 이런 시골은 처음이라는 둥, 모험모험, 타령을 해가며 제대로 신이난 종률이 덕에 나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대합실 구석에서 우동 김밥에 소주를 한 병 나눠 마시곤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갈 즈음,
"형님 누구 찍을거에요?" 대뜸 묻는 표정이 식어가는 대화를 잇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되서 나도기분 좋게 응 문제인!, 하고 응수를 했다.
나는 종률이가 박근혜지지자라는 걸 알지 못했고 종률이는 내가 문제인을 지지하리라 생각을 못했었다. 서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빚어낸 오해였던 것이다.
종률이와 나는 대합실에서 서로 감정이 상할만큼 싸웠다.
보통 정치색이 완전히 다르면 내 주장을 개진하지 않는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먼저 물어본 건 종률이였지만 박는혜를 찍으면 안된다고 설득을 시작한 건 나였다.
덕분에 지리하기만 했던 진주의 새벽 시간은 잘도 갔다만,,,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의 마음은 통영행 버스를 타기 직전에 만날 수 있었는데 앞으로 이틀은 우리 둘 뿐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우리는 화해를 했지 싶다.
버스에서 내가 듣던 팟 캐스트를 잠시 들었던 종률이가 내게 그딴 거 몇번 듣고 뭐 아는 줄 안다, 했던 일이며, 나는 종률이에게 강남에 아쉬운 거 없이 사는 게 다 네 덕이고 네 부모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느 걸 알아야한다, 훈계를 했던 모습은 아마도 서로 잊지 못하겠지만, 어쩌나 우리는 이제 또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걸.
통영에서 연화도로 가는 배 안에서도 마음이 안맞아 싸울 때는 확 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도 났지만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 되어 내 통영 여행의 불청객은 기억속에서 단짝으로 변해있었다.
참, 종률이 그자식이 노무현 욕할 때는 개새끼가 죽을래, 하고 진짜로 욕이 나올뻔도 했었는데...ㅋㅋ
그 싸가지 없는 놈 추울까봐 뜨끈한 국물, 커피 쉬지 않고 끓여 내어 마시라하고 편하게 자라며 텐트까지 독채로 내준 건 나 믿고 험한 길 따라나선 친구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들이 선명하다, 그날 분명히 그랬었고 지금 내 기억에서도 그렇다.
코고는 소리가 나는 텐트를 쳐다보면서 그래도 같이 있어서 좋구나 생각을 했었다.
종률이 너도 좋아? 그래?, 대답할 리 없는 텐트에 대고 조용히 물어보지만 작은 섬을 휘감는 바람 소리에 내 목소리가 내게도 들리지 않았다. 잠이 안와도 밤새 별을 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날 나는 속수무책으로 해 뜨기만을 기다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