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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참을성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동물들은 달리 어떤 방도가 없음을 깨닫게 되면 자연 또는 인간의 법칙 -
동물들에게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 에 순응한다.
동물들은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들은, 멀어져만 가는 미래의 순간을 그리며
기력을 소비하는 우리들 인간에서 있어서처럼, 허비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에게 그 기다림의 시간이란 고정된 현재이며
끝없이 계속되기는커녕 의식의 매순간에 끝이 나버리는 것이다.
하루 동안 집 안에 갇히는 경우, 개는 즉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차지할 것이다.
개는 여러 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장 편안하게 보이는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게 마련이다.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지금 내 발치에는 ‘모모’가 널브러져 있다. 마치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온몸에 힘을 주욱 빼고 녀석은 천하태평 잠을 자고 있다. 가장 편안하게, 지금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은 잠자는 일뿐이라는 듯이.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믿고, 절대 해악을 끼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그러다 아주 작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언제 잠을 잤냐 싶게 눈을 번쩍 뜨고는 행여 자기를 두고 어디 갈까봐 냉장고 앞이든, 건넌방이든, 화장실이든, 옷장 앞이든 하루 종일 종종종 꽁지벌레마냥 뒤를 쫓아다닌다.
<말리와 나>를 어느 분께 선물 받았다. 책 표지를 펼친 순간 우리 집 말썽쟁이 모모와 표지 속 흑백사진의 말리가 너무나 닮아서 깜짝 놀랐다. 개들의 어느 부분에 신비한 유전자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모모와 말리는 여러 모로 이목구비가 다르지만 눈을 갸름하게 뜨고 걀걀 웃는 표정이나 천하태평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한 배에서 난 형제 같다. 얼굴뿐만 아니라 말썽부리는 수준도 서로 동급인데 쓰레기봉투 뒤집기는 기본이고, 집안에 있는 쿠션이란 쿠션은 다 귀퉁이를 뜯어놓기 일쑤며 의자 다리를 질겅질겅 씹어 놓고, 화분의 흙을 죄다 파헤쳐 놓았다. 한번은 싱크대에서 참기름 병을 물어다가 소파에 기름칠을 해놓아 한동안 참기름 냄새로 진저리를 치게 만들기도 했다. 올봄에는 말리처럼 애견학교에 보냈다가 되돌아오기까지 했다. 거실 모퉁이의 벽지는 시멘트벽이 보일 때까지 뜯어 놓아서 이사할 때는 결국 도배를 새로 해줘야 했다. 한 살이 돼도 두 살이 돼도 얌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들을 보며 래브라도를 키우는 사람들끼리 체념 섞인 목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얘는 도대체 언제쯤 얌전해질까요?’ 하지만 이 말 속에 함께 살고 있는 개에 대한 깊은 애정이 숨어 있음을 래브라도를 키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말리처럼 방충망이고 소파고 돈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걸 장난감화 하는 녀석들이 슬슬 나이를 먹어 말썽이 줄어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그 고난의 나날들을 잊어버리고는 다 커서 철든 아이를 보는 것처럼 그 얌전한 모습에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래브라도가 얌전해지는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라는 족속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아이의 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외로움을 머리에서 한 번 걸러낸 말이 아닌 온몸으로 개들은 표현한다. 개들은 아픔을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혼자 있는 외로움도 애써 견뎌 낸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해도 군말 없이 배고픔을 참아낸다. 하지만 반가움은 참지 못한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해서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대고 핥아대고 몸을 비빈다. 온몸으로 ‘삶의 단순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개들은 날마다 함께 사는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말리는... 삶의 단순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숲을 산책하는 일, 새벽 뜰을 덮은 첫눈, 희미한 겨울 햇빛 아래 얇은 잠을 청하는 일 등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게 했다. 나이 들고 몸이 늙어도 말리는 어려움을 낙관적으로 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 말리는 조건 없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변함없는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렇다. 조건 없는 사랑만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그로건 가족과 말리처럼 우리의 삶도 모모에게 길들여졌다. 나무와 숲이 많은 곳에 살 터전을 정했고 어스름 해지는 오후에 모모와 함께 하는 산책이 소소한 행복으로 자리 잡았으며, 계절이 바뀌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는 걸 눈과 코로, 피부와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손에 움켜쥔 것의 양으로 행복의 질을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부터 행복이 비롯됨을 깨달았다. 모모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개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돌보는 사람의 곁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기를 바라게 되었다. 오늘도 모모는 영양탕집 아줌마에게 물 한 그릇을 얻어먹고 꼬리가 떨어져라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어대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을 다닌다. 한나절 실컷 낮잠을 자고 와서는 마감에 쫓겨 일하고 있는 내 허벅지 위에 앞발을 턱 얹고는 동그란 두 눈으로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나랑 놀자!’

이 책을 덮으며 모모가 내 곁에서 내내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말리처럼 나이가 들어 늙어서도 개구쟁이 아이의 마음으로 말썽을 부리길 바란다. 건강한 몸으로 즐겁게 살다가, 숨을 거둘 때 '그동안 뼈다귀는 고마웠어요.'하며 "컹!" 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모모를 떠나 보내는 슬픔의 눈물 대신 '우리 그동안 함께 잘 지내온거지?'하며 모모 발을 꼭 잡아주고 싶다.


                                                        [ marley & mo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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