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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1921년 미국 콜로라도의 오지 중에 오지인 캐슬락에서 목장 주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척박한 오지에서 소와 양떼를 키우며 가업을 일으킨 아버지 세대와 달리 태생적으로 유약 하고 힘쓰는 걸 싫어 했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급우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닐 때 이 남자는 몰래 인근 숲으로 도망쳐서 그 곳에서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 책에 푹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 남자는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 하고 싶었지만 태어나기 일 년 전인 1920년에 불어 닥친 경제 대공항으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서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이 남자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장학금을 받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입학한다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삼촌들 처럼 아들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서 변호사가 되기를 바랬다. 남자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경제학 전공으로 바꾸지만 수업은 영문학과 수업을 청강 했다.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 졸업마저 불확실해 졌을 때 군 입대 통지서가 날아 온다.

1940년 대동아 전선에 뛰어든 일본의 침공이 태평양으로 확대 되고 미 해군은 서부 버클리 대학에 일본어 랭귀지 스쿨을 개설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는 미 해군 통역관으로 군 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바램 하나로 버클리 대학에서 일본어 수업을 신청한다.

2년 동안 버클리에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한 남자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 항만을 침공하자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관으로 선발 되어 미 해군 기지 함선에 올라탄다.

하지만 군 장성 집안 출신도 아니고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남자는 장군의 직속 통역 최종 선발 심사에서 탈락한다.

1942년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 도착한 남자는 주변의 수상한 동태나 정보를 수집이나 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어촌 마을을 떠돌아 다닌다.

남자는 어촌 마을에서 일본 민간인들과 접촉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살아 있는 일본어를 배우게 되고 뜻밖에도 적군인 미군에게 친절하게 다가와 먹을 것을 주는 일본인들의 마음에 감동 받는다.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남자는 미 해군으로 부터 미국 서부 수용소에 갇힌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하와이에 거주 하고 있던 15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을 서부 강제 수용소로 몰아 넣었고 이 곳에 스파이나 조력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미국은 수용자들을 강하게 심문하며 이중 간첩 색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심적인 고통을 겪은 남자는 임무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 찾아가 외교관 시험에 응시한다. 필기 시험에 통과 한 남자는 면접 자리에 나온 담당 교수로 부터 콜로라도 촌놈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일본 신문과 방송을 능숙하게 번역하고 통역하는 실력으로 단번에 합격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 한 후 남자는 전쟁 당시 그림자 조차 목격한 적 없었던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사이자 외교관 자격으로 다시 일본 땅에 밟는다.

끝없이 밀려 드는 서류 작업과 전범 재판소 기록물을 번역하는 일에 싫증을 느낀 남자는 2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외교관을 그만 둔 남자는 대학에서 일본어 강의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 한다.

1956년 미국 포드사가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남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에서 헤이안 시대 문학과 일본 현대 문학을 공부 한 후 예수회 재단 학교인 소피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일본 현대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강사 월급으로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번역 작업은 곧바로 미국 출판사에 출간 되어서 1960년대 미국 독자들은 일본 문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영어로 읽게 되었다.

8년의 시간이 흘러 1968년 이 남자는 스웨덴 스톡홀롬 왕궁에서 열리는 노벨문학상 수여식 자리에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바로 옆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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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수상 소감에서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고 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재단에서 받은 상금 6만 크로네에서 절반을 뚝 떼어서 '설국'을 영어로 유려하게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1921-2007)에게 주었다.

일본 언론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큰 기여를 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일본 건국 기념일인 2월 11일에 태어났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노벨 문학상 발표 당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 지리산 노고단을 등정 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습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도쿄에 집을 마련하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 유물을 수집했다.

불운한 경제 대공황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본어 공부로 인생 역전을 맞이했어도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이였다.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싸우기를 좋아하고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목소리가 크고 마늘 냄새가 나는 더러운 종족이라 비하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선 백자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밀 반출한 도자기를 일본 정부가 마련해준 도쿄 저택에 숨겨두기도 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만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다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갖춘 심성이 부드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그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 하지 않았다면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린 1등 공신은 그녀의 작품 <채식주의자> 영어로 처음 번역한 영국 출신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다.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채식주의자Vegetarian >는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기 전에는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수상 이후 비평가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부커 상 수상 이후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책은 프랑스어 독일어를 비롯해 스웨덴어로 번역되어 출판 되는 동안 많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면서 원본을 왜곡하고 한국문학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영어 번역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원본에 충실한 번역의 잣대로 문학번역에서 오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충실한지 아닌지, 정확한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어와 한국어 두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1대 1 직역 번역을 하게 될 경우 한국어 맛을 살리는 번역은 실제 영미권 독자들에게 와 닿지 않게 된다.

한국 학자들은 해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이 한강의 작품을 한국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서 읽지 않고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작품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도 과감하게 의역을 해서 한동안 일본의 영문학자들 사이에 비판이 일어 났지만 일본 내에서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어 번역을 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한 번역가의 공로는 높이 칭송했다.

1937년에 출간된 <설국>은 일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1960년대까지도 1쇄를 넘기지 못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시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미시마 유키오였다.

바둑대전이 열리는 날이나 바둑 전문 잡지에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이 실렸을 뿐 일본 독자들은 시적인 언어로 함축된 그의 작품을 지루 하다고 생각했다.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 명문대인 스탠퍼드·미시간·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하며 최고의 교수로 이름을 날렸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1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일본 최고 고전인 '겐지이야기'를 영역을 완수한다.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출간한 회고록에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려면 뭔가를 끊임없이 내다 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일"이라며 “작품을 시작하고 끝 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강 작품의 영어 번역을 원본과 한 문장씩 대조 하면서 오역을 지적하는 세미나를 열었던 영문학자들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지대한 공을 세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 깊이 있게 분석한 논문을 쓴 학자들이 없다.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수여하는 부커상 수상식에서 데버라 스미스는 단어를 선택할 때, 그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지, 독자들이 읽었을 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를 생각하면서 원문에 있는 함축적 의미와 이미지들을 깊이 고민하면서 번역한다는 말을 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하기 전까지 그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해외토픽에 실릴 만큼 기이한 장면이 여러 매체에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시인의 집 앞으로 기자가 대거 몰려가 있는 모습이라든지 이번에도 한국의 **시인의 수상은 유력한가?라는 기사 제목부터 영국의 한 도박 사이트에 **시인은 몇 번째 올라가 있는가?라는 기사까지 노벨 문학상 발표 직전까지 쏟아졌다.

이런 장면들이 20년 동안 이어지는 동안 한국 학자들과 학계는 번역가들을 양성하는데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번역가의 자질과 오역을 지적해 왔다.

한강의 기적이 일으킨 K문학의 르네상스가 더 넓게 뻗어 나가려면 번역을 창작으로 보고 번역가에게도 문학적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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