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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지금으로 부터 142년 전인 1884년 12월 5일 , 조선 땅에서 선교를 하며 의술을 펼쳤던 미국인 호러스 알렌(1858~1932)은 늦은 밤, 휘황찬란한 달빛이 기이할 정도로 대낮 같이 빛나서 일기에 황홀할 정도로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다.

“인적이 드문 거리는 조용하고, 달빛에 비친 거리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산보 하기 위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일기를 쓰고 난 후 호러스 알렌은 대낮 같이 빛나는 달빛을 맞으며 집 주변을 산책 하고 밤 10시 반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자마자 누군가 요란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화들짝 놀란 호러스 알렌이 문을 열자  미국공사관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변이 일어 났습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 하십시요.'


1884년(고종 21) 12월 4일 저녁, 우정국의 책임자였던 홍영식(1856~1884)이 한국 최초의 근대적 통신체제 출범을 기념하는 연회장에서 급진 개화당의 주역들(김옥균,박영효,서광범, 서재필)과 함께  민씨 척족 등 수구파들을 몰살할 계획을 꾸민다.

조선의 급진개화파들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청불전쟁으로 조선 주둔 청군이 3000명에서 절반으로 감소한 시기를 기회로 삼고  자주국가 수립과 개혁을 위해 정변을 계획했다.

1884년 12월 4일  밤 10시 30분,   개화당은 우정국 개청 축하연회장에서 개혁 정령을 반포 하기 전  고종을 경우궁으로 옮기고 군사권을 장악하고 문벌 폐지와 인재 등용, 군제 개혁 등 근대적 개혁안이 담긴 개혁 정령을 반포했다.

개혁 초기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청에 맞서 자주를 회복할 것인가, 당분간 보호 아래 국력을 키울 것인지를 놓고 분열의 조짐이 시작되었고 섣불리 일본군을 끌어 들여서 민심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청나라군이 개입할 시간을 벌어 주었다.

당시 일반 조선인들은 개항 이후 일본을 침략자로 인식하고 있었고 고종의 성급한  군사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급속하게 밀려 들어 온  외국 상품의  범람으로 조선 경제는 무너져 버렸다.

도로 정비를 이유로 살던 주거지들이 철거 되어 고향을 떠나 전국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민중들은 개화당이 발표한 개혁 정령에 극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부유한 금수저 20대 조선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주변 강대국 세력들의 본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이들의 교활한 전략에 휘말려 들어갔다.

특히 정변 마지막 날 고종이 폐립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고 개화당의 집을 파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출처 :일본국회도서관 

일본에서 최고 조선전문가였던 이노우에 가오루(1936~1915) 외무경은 청일전쟁이 발발한 뒤 조선의 내정개혁을 위해 일본이 주도해 시행한 갑오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선 공사로 부임하기전 도쿄에서 김옥균을 만난다.

고종 내외의 사치와 민씨 척족들의 부패로 조선 재정은 거덜이 난 상태에서 김옥균은 조선 국방력 확충에 필요한 무기 구입과 신식 군대 훈련에 들어갈 자금을  일본 정부로 부터  끌어 올 생각이였지만 이노우에게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미 2년전 일본 정부는 조선왕 고종에게 요코하마 정금은행에서 대출한 17만엔을 차관 해 주었지만 명성 왕후 일가와 황족들이 외국사절 접대, 수신사·조사시찰단·유학생 등 파견, 부산·원산·인천 등의 개항한다는 명목으로 펑펑 써버려서  나라를 지키고 경제 내실을 다질 곳엔 단 한 푼도 쓰이지 못했다.

김옥균은 앞서  후쿠자와 유치키에게 2천만엔을 지원 받았지만 개인 경비와 사치 비용으로 홀라당 써버렸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이노우에는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허세와 허풍이 심해서 신뢰 할 수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출처:문화재청 /1884년 갑신정변 실패후  망명 시절의 김옥균의 모습.

김옥균이 벌인 일로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했다.

가장 먼저 그의 아내와 딸은 관노비가 되었고 집안은 풍비 박산이 났다.

3일 천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선의 지배계급 내에 뿌리 깊었던 증오심이 폭발해서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이 틈을 노렸던 청나라와 일본은 서로 살벌한 기싸움을 벌이며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를 위해 1885년 4월 “장래 조선국에 만약에 중대 변란이 생겨 청·일 양국 혹은 한 나라에서 병사 파견이 요구될 때에는 마땅히 먼저 상대에게 행문지조(行文知照·문서로 알린다)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톈진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이 7년 후 조선 땅을 불바다로 만든 청일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고종과 명성황후 일가는  김옥균을 비롯해 개화파 세력 처단에 집착하며 나라를 통째로 외세 세력들이 쉽게 들락거리게 만드는 빌미를 던져준다.


조선 땅에 쿠테타가 발발 했다는 소식에 알렌은 황급히 조선의 통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독일 외교관 출신인 묄렌도르프의 집을 찾아 간다.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오른쪽 귀에서 눈두덩까지 칼에 베여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이를 발견한다.

명성왕후의 양오빠 민승호의 양아들로 고종 내외의 신임을 독차지 하고 있었던 민영익(1860년~1914)은 하늘에서 내린 천운으로 의사 알렌의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했다.

 천하(天下)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전통적 우주관에서 ‘온 세상’을 뜻한다. 하지만 시간을 뜻하는 수사와 명사 뒤에 붙으면   짧은 기간 동안 권력을 잡았다가 그 권력을 빼앗긴 사건을 의미한다.

1884년  갑신정변 두달 뒤인 12월 13일, 도망가지 못한 김봉균, 이희정, 신중모, 이창규는  능지처참됐고, 이점돌, 이윤상, 차홍식, 서재창, 남흥철, 최영식은 참형을 받았다.

 일본으로 도망갔던 김옥균은 청나라 실세 이홍장을 만나러 상하이에 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된 뒤 국내로 송환 돼 양화진 백사장에 시신이 던져 졌다.

김옥균의 생부 김병태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독을 마시고 자결했고 그의 아내와 딸은 관노비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다.

가장 오래 살아 남았던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의  부모, 아내와 자식 모두 독금물을 먹고 자살하거나 자결했다.

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해 대한제국 황실의 독립 의지를 알리려 했던 고종의 은밀한 계획은 일본 측에서 심어둔 비밀 첩자들인 황제를 보좌하는 궁녀들과 내시들에 의해 흘러 들어갔다.

사전에 고종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일본은 뜻대로 되지 않자 독살을 감행했다.

1919년 1월 19일  이날 고종이 마신 음료는 식혜였다.

사망 직후 고종의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 했고 이가 빠지고 혀가 닳아 있었으며 목에서 복부까지 30센티미터가량 검은 줄이 나 있었다는 기록이 윤치호 일기에  기록 되어 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 수기에 조선총독부가 시의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적었다. 

궁내부 사무관을 지낸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 '이왕궁비사'에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민병석과 윤덕영이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와 모의해 안상호에게 명해 독을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적혀 있다.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안상호는 1896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귀국 후 순종과 고종의 전의(주치의)로 활동하며 조선 최초 서양 개업의로 활동 했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당한 이완용을 치료한 하며 신의 손으로 소문이 자자해지기 시작했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 남은 매국노 이완용은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 즉 경술국치 체결에 앞장서서 

대정친목회를 조직해서 조선 땅의 경제인과 관료·언론인·교육자·법조인·의료인을 참여 시켜 조선인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고 세뇌 시키는 일본의 손과 발이 되었다.

이 조직에서  한국 최초의 개업의 안상호는  평의원을 지내며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릴 때 경기도 군포 등지의 철도·도로 인근에 수천 평 규모의 부지를 소유했고 이후 자손대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며 대한민국 땅에서 살고 있다.

2026년은 갑신정변 발발 142주년을 맞는 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라가 퍠망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었을까?

갑신정변 주역들인 개화당 엘리트들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강경 수구보수파였던 노론명문가의 자손들이었다.

조선 왕조 5백년 내내 계파와 당파 싸움으로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으로 내부에서부터 섞어 들어 갔다.

로봇과 공존 하는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협회.단체, 조직, 정당, 관공서 그리고 민생의 안전과 치안을 최우선으로 맡고 있는 경찰 조직까지 모두 썩어 버려서 부패 할 대로 부패 하다 못해 은폐와 은닉, 눈감아 주는 것은 당연시 하고 있다.


암행어사, 홍길동이 등장 한다 해도 법과 정의가 실종된  이 나라를 구제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안전을 위해 차라리 신변 보호용 로봇이 등장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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