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며 상품화 시켰던 앤디 워홀은 물질 만능 자본시대에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키는데 능했다.
대중은 그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열광했고 비평가들과 전문가들은 저급하고 창의적이지 않는 타인의 창의력을 훔치는 교묘한 사기꾼이라 손가락질 했다.
광고계에서 창작 작업을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소비되는 예술이 무엇인지 깨달은 워홀은 기존의 정통 예술가들처럼 고립된 작업실 공간에서 작업을 하지 않고 공장처럼 생산하며 주문이 들어 오는 데로 찍어내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무엇을 소비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지 꿰뚫어 보았던 천재였다.
워홀은 이전 시대의 예술가처럼 고립된 공간에서 팔리지 않는 작품을 창작하는데 홀로 고군분투 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조수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고용해서 기계적으로 작품을 제작을 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아이디어와 구상은 워홀이 했고 작품 생산은 조수들이 제작 했다.
그 결과 워홀은 한 개의 작품을 단 몇 시간 만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를 만들어 냈다.
그에게 예술은 고차원적이고 고색 창연 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고 각종 주문과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끌어 와서 다른 사람의 창작물까지 복사하고 복제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였다.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워홀의 예술을 무한 복제 하면서 기존의 예술적 가치와 창의적 작업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홍보와 선전 예술을 완벽하게 구사 했던 워홀의 팝아트는 대중들과 공생 관계가 되어 1960년대 미국 대중 문화 전체에 새 물결을 일으킨다.

워홀이 컬러 스크린 프린터기기로 찍어낸 스팸 깡통은 광고미술에서 상업 미술시장으로 옮긴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의해 비행기를 폭파 시키는 폭탄으로 변신한다.

(c)꽝,로이 리히텐슈타인,1962
만화 같은 상상력을 시각화 시키며 짧게 내뱉는 비속어나 감탄사를 이용한 언어유희 같은 작품들이 드로잉과 회화, 사진 예술계를 넘나들면서 창조적 독창성이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예술가들의 위상이 전복 되어 버린다.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시작한 소비 지향 팝 아트의 상업적인 인쇄 기법, 대형 광고판, 교통 표지판, 상품의 포장지,대중 잡지와 신문, 텔레비전을 이용한 작업은 21세기 현 시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상징적인 1960년대 팝아트 세계가 매콤하고 바삭하며 치즈가 듬뿍 들어간 한국 길거리 음식과 만났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벤데이 도트, 고대비 원색, 감성적인 만화 표현 등 빈티지 미국 만화 미학과 서울에서 즐겨 찾는 길거리 음식의 매력적인 식감을 생생하게 조화시킨 특별한 경험을 영상을 통해 맛보세요.!
🔥 탑처럼 쌓여 있는 붉은 색 매콤한 떡볶이
🍙 한 줄에 4천원까지 치솟은 K김밥
🍗 젠슨 황도 반한 초바삭 골든 K치킨
🧀 세계인들이 한 번 맛보면 빠져버리게 만드는 K 치즈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