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4년 스코틀랜드에서 온 23세의 한 남자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런던 시내를 배회 하며 지나쳤던 한 건물에 신경질환 전문 치료소 라는 간판을 발견한다.
숙소로 돌아간 남자는 자신이 19살부터 원인을 모르는 우울증에 시달려 왔는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학업 마저 중도 포기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교외 지역의 어느 상인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쓴다.
그는 이 편지를 신경 질환 전문 치료소로 보내고 전전 긍긍하며 답신을 기다린다.
'이 병의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저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전 세계를 돌아 다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흄
이 편지를 쓴 청년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인 데이비드 흄(1711-1776)이다.
데이비드 흄은 18세기 애덤 스미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기 전 청년 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우울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오전 부터 늦은 저녁까지 말을 타고 벌판 위를 달렸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해 대학에서 법학 공부도 중도 포기 했고 책 조차 읽지 못했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서 허공에 물체를 매달아 놓고 온 힘을 다해 주먹질을 했고 해상 무역 상사 점원으로 취직해서 마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각 지역마다 퍼져 있는 상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에도 매달려 보았다.
편지를 보낸 후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고용한 해운 상사 고용주가 서류상 실수를 했다며 해고 통보를 받게 되어 신경 질환 치료소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 서명도 날짜 적지 못한 채 급히 숙소에서 떠날 채비를 해야만 했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데이비드는 가족과 친지들이 보내 준 생활비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철학자 데카르트가 다녔던 예수회 학교 소속의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머무는 루아르 계곡물이 흐르는 수도원 숙소 창 밖 너머 드넓은 정원이 펼쳐 져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평온한 대 자연 속에서 4년 동안 머물며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집필했다.
자연은 당신의 정열을 학문 하는 데 쏟아 부으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학문을 인간적인 것, 그리고 행동으로 사회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되게끔 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난해 한 사고와 지나치게 파고드는 탐색들을 금지하고 호되게 꾸짖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당신을 구슬픈 침울함 속으로, 그리고 끝도 없는 불확실성으로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거짓 된 발견물들이 세상에 전해질 때 당신이 부딪치게 될 가혹한 평판 때문이다.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당신의 모든 철학 한가운데에서 계속 한 인간으로 존재하라.
-데이비드 흄
'죽음과 빈곤, 수치와 고통을 비롯한 삶의 모든 시련'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청년 데이비드 흄은 유럽의 인구 반을 쓸어 버린 페스트와 전쟁, 가난, 질병으로 고통 받았던 참혹했던 현실, 시대의 고통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뒤 흔들었던 이 책을 집필했을 때 데이비드 흄의 나이는 26세로 유럽 평균 남자의 수명이 45세이던 시대였다.
데이비드 흄이 좌절의 청춘을 보냈던 그 시대는 오십세를 넘겨서 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행운아라 불렀다.
인생의 분기점에 다다랐을 때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아'가 무엇인지 '개인의 정체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스스로 자문했다.
그가 탐구 했던 '자아'는 언젠가 사라져서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無의 상태가 된다며 서양의 이성을 떠받치고 있었던 3개의 기둥인 인과관계-정체성-영혼은 한 낮의 허구 일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 했다.
자신의 철학 사상이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하며 사회에 가장 중추적인 지식인들인 형이상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될지 근심했던 26살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존재는 어떤 원인으로부터 유래하는가?
-나는 어떤 조건으로 돌아갈 것인가?
인간의 삶이 반 세기를 넘기기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고민 하고 탐구 했던 위의 세가지 질문은 2026년 현시대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부터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다.
부모의 등골이 휘어지도록 교육 지원을 받아 졸업장을 쥐고 사회로 나온 흙수저 출신들이 금융 대출 빚을 갚는 동안 부자는 자식에게 부를 대물림 해주고 가난은 가난의 대물림이 되어서 아무리 일해도 내집 마련의 희망은 이번 생에 영영 이루지 못할 좌절의 꿈이 되어 버렸다.
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AI기기들이 차지 하게 될 것이고 정규 교육을 마치고서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미래 세상에 우리 인간은 21세기 인류의 유산이 남긴 조산아들이 될 것이다.
'눈 먼 자연, 생기를 깨우는 어떤 거대한 원칙에 따라서 잉태되어,
분별력이나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자연의 허벅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구의 조산아들'
-데이비드 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