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난시로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 하지 못하는 지로는 밥을 먹을 때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고 항상 시선은 책을 향해 있다.
소년 지로의 시선은 책과 미래에 자신의 꿈을 실현 시켜줄 비행기를 만드는데 온통 쏠려 있지만 소년이 처한 현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하다.
관동 대지진 발발로 도쿄 전체가 불길에 사로 잡히고 조선인을 죽이는 살육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는 도쿄를 소년은 그저 바라 볼 뿐이다.
대학을 마친 지로는 나고야로 건너가 항공사 부품 설계부에 취직해서 전투기 도면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가 그토록 갈망하고 염원했던 꿈의 비행기가 완성 되기 직전 대공황의 여파로 은행들이 연달아 부도가 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거리로 나온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지로는 자동차 대신 소떼를 이끌고 전투기를 겨우 비행장으로 옮겨 놓고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지만 어떤 엔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로는 매일 밤 꿈에서 자신이 만든 붉은 색 일장기를 새긴 전투기들이 추락하는 꿈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을 실현 하기 위해 지로가 살육과 파괴의 화신이 되는 전투기 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일본은 조선인들의 밥상에 올려지는 모든 걸 빼앗아버리고 한반도에서 끌어 모아온 쇠붙이들을 전부 녹여서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일본 군부는 독일 융커스사에 전투기와 폭격기 제조 기술 도입에 비용한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한반도에서 강제 징용으로 끌고 와 강제 노역을 시키고 동아시아 전역에서 도로 설계 기술자들과 항공 엔지니어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기여코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다.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세상을 전부 집어 삼킬 태세로 대량 살육 기기 공장을 가동 시킨다.
전투기 설계팀장 자리에 올라 선 지로는 어느 여행지에서 한 독일인을 만나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히틀러의 독일은 깡패 집단입니다. 중일전쟁, 잊어요. 만주국, 잊어요. 국제연맹 탈퇴, 잊어요. 세계를 적으로 만든 것, 잊어요. 일본은 파멸해요. 독일도 파멸해요.”
1937년, 지로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약혼녀 사토미 나오코는 결핵이 악화돼 각혈 하지만 그는 아픈 그녀를 옆에 두고 전투기 개발에 열중한다.
마침내 지로는 꿈에 그리던 '제로센'을 완성하고, 그리고 그 제로센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던 그 날 약혼녀 나오코는 세상을 떠났다.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 너덜 너덜한 조각으로 돌아 온 '제로센'
비행장은 고철이 된 전투기의 잔해로 가득하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끝은 너덜너덜 했지만요.”
1940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지로의 제로센은 단 한 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1939년에 첫 비행을 마친 A6M 제로센은 1940년 7월에 생산되어 같은 해 9월 중일 전쟁에 처음 투입 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가 된 A6M 제로센은 250Kg 폭탄을 적재한 채로 적함에 들이받도록 훈련 받은 카미카제 특공대가 된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본래 이름은 신풍특별공격대(神風特別攻撃隊 )로 일본 해군은 '신푸'라고만 불렀는데 한 미국 기자가 '카미카제(Kamikaze)' 특공대라고 잘못 읽었던 것이 대명사로 굳어져 버렸다.
1274년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서 몽골 제국군과 고려군이 바다를 건너오던 중 두 차례나 태풍을 만나 좌절한 것을 두고 "신령이 일본에 가호를 내려 준 것"이라 생각하여 '신풍'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한 카미카제는 인류 전쟁 역사상 기계가 인간을 공격한 최초의 인간 드론 살상 폭격기로 미군 함선에 들이받는 것을 전제로 자폭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와 하야오는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는 지로의 입에서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가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일본 전투기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지로를 다시 한 번 후대인들에게 각인 시켰다.
하지만 그가 만든 '제로센'은 그야 말로 살상 전장 터의 지옥의 불길을 치솟게 만들었던 불쏘시개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와 하야오는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는 지로를 사람도 사물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지독한 근시라는 신체적 한계를 갖은 자로 설정하고 소년이 열정적으로 꿈에 매진하는 모습을 부각 시켜서 정작 지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죽이게 될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는 스토리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낭만적인 화풍으로 일본 군부가 저지른 끔찍한 살육의 만행에 대해 당시 일반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 역사의 희생자일 뿐이고 태평양 전쟁은 일본 국민이 아닌 일본 군부의 군국주의가 불러 일으킨 피의 전쟁이였다는 걸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꿈에 그리던 '제로센'을 완성한 지로의 제로센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던 그 날 약혼녀 나오코는 세상을 떠났다.

악몽에 시달리던 지로의 꿈에 약혼녀 나오코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살아가세요. 살아야 돼요.”
카미카제를 앞세우고 동아시아 전역을 피바다로 물들였던 일본은 히로시마 폭격을 맞고 항복을 선언하고 어떻게든 살아 남았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가 식민지배를 벗어 난지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5대 국경일 중 무려 2개가 일본과 역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인 8월 15일은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 경축 행사가 열리는 동안 일본에서는 전몰자 추도식을 거행 하며 전범들이 유해가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 하며 '종전 기념일'로 부르고 있다.
매년 8월이면 일본 미디어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들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방송 하고 있다.
일본은 매년 원폭 투하의 날이 돌아 올 때 마다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가 정당 했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 하며 원폭의 비인간성과 일본이 지구상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데 대한 피해자 의식을 일본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 시키고 있다.
특히 일본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발행 하고 있고 우익 단체의 사상과 신념을 대변하는 미디어와 언론들이 앞장서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전범국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1886년(고종 23년),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으로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에 부임한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 하면서 청나라의 부당한 내정 간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 출신의 변호사이자 판사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조선이 청의 속방이 아닌 주권 독립국임을 강조하며 서구의 근대 국제법 이론을 근거로 삼아 이홍장의 '속방론'을 반박했다.
고종의 외교 고문 데니가 활동하던 시절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2025년 현재와 거의 흡사하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미국 함정을 타고 워싱턴 D.C.로 떠날 때 이홍장은 주재국에 가면 가장 먼저 청국 공사관에 알린 뒤 청국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외교 모임에서는 청국 공사의 아랫자리에 앉고, 문제가 생기면 청국 공사와 합의 처리하라는 영약삼단(另約三端)이라는 치욕적인 원칙을 제시 했다.
하지만 박정양이 청국 공사를 배제하고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청하자 이홍장은 고종에게 그의 처벌을 요구했다. 박정양을 국내로 소환한 고종은 형식적으로 처벌한 뒤 그를 다시 중용하자 외교 고문 데니는 ‘청한론(淸韓論·China and Korea)’이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이 청에 속한다는 속방론(屬邦論)을 부정하고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독립국으로 규정하면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데니는 이홍장을 대대적으로 규탄하고 청나라 정부에 소환을 촉구하자 스파이처럼 오웬 니커슨 데니를 이용하려던 청나라는 그가 뜻밖에도 청나라를 견제하는 외교 활동을 펼치자 1890년 외교 고문직에서 파면 시켜 버린다.
1890년 고종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태극기를 선물하고 이를 소중하게 간직했던 오웬 니커슨 데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친척들이 대대로 보관해왔다.
1980년 오웬 니커슨 데니의 누나의 손자인 윌리엄 랠스턴이 가족들의 가문에서 물려 받은 유품을 정리하다 이 태극기를 발견한다.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했다.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 된 이 태극기는 가로 262㎝, 세로 182.5㎝에 흰색 광목 두 폭에 새겨진 4괘의 형태와 배치는 지금의 태극기와 같지만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의 문양을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인다.
'데니의 태극기'는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자, 국기 제정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실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적과 아군을 구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진짜 적에게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적을 친구처럼 사랑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가 누구를 적으로 삼아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
'적을 분명히 알고' 그 적에 대응하는 대비책을 단단히 세워 놓고 적재 적시에 적과 맞붙어야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인 대응으로 진짜 적에게 사소한 약점을 드러내 보인다.
이 세상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역사에서도 끊임없는 약탈과 침략을 행했던 국가들끼리도 서로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는 협력과 대립의 균형 추를 움직이며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을 유지 하고 있다.
광복 81년...
2026년의 8월 15일 현재 시점에서 지난 반 세기를 훌쩍 넘긴 그 시절을 되 돌아 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지도 상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지워졌던 지난 세월 동안 미래 세대를 위해 피를 흘린 선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