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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영국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은 안내 책자에 총 11만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1753년 부터 영국의 부유한 귀족들이 이집트 원정 탐험을 떠나서 야금 야금 가져 온 것들과 기둥과 신전 석가래까지 전부 뽑아서 가져 온 것들이 개인 당 최소 1만점에 이르기 때문에 전문연구가와 학자들은 실제 소장품은 더 많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다.

특별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학부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박물관을 드나들었다.

 친구들 중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자들이 이곳에서 인턴 근무를 해서 관광객들이 덜 붐비는 요일과 시간을 알려 줘서 한적한 시간에 여유롭게 구경 할 수 있었다.

1759년 1월15일 일반인들에게 개방했을 당시 의사이자 박물학자이며 컬렉터인 한스 슬론 경이  자신의 소장품 7만1000여건을 정부에 기증 하면서 대영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대영 박물관의 소장 유물의 범위와 수준 ,규모는 세계 최고로 이곳에 가면 고대 이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 석상과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여왕의 수금(하프)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신라 왕이 착용한  금제 귀걸이 장식까지 볼 수 있다.

로제타 스톤까지 볼 수 있는 대영 박물관의 고대 유물 상당수는 대영제국 시절에 약탈하고 강탈한 것들이여서 현재까지 반환 문제 제기로 국가 외교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관을 둘러 보는 데 평균 관람객이 소요 하는 시간은 평균 몇 십 분에서 2-3시간 정도이지만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 한 달도 부족할 정도로 방대하다.

어느 해 봄,부활절 방학 기간 동안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이집트로 여행을 갈 때 한 사람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행을 취소해서 이집트 여행길에 따라 가게 되었다.

앞서 이집트 여행을 했던 친구들이 3월이여도 그곳 태양은 사람을 태울 정도 이고 풍토병도 있으니 예방 주사와 응급 의료품을 필시 준비하고 챙겨 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해 3월의 이집트  카이로의  날씨는  이른 아침에 서늘할 정도로 11도 정도였고 한 낮엔 23도에서 25도 사이를 오고 가서 런던의 5월 초순 정도의 기온이여서 활동하기 딱 좋았다.

시내와 유적지를 오고 가는 동안  뜨거운 태양에 타 죽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태양의 열기는 일개 섬나라에서 내리 쬐는 세기와 전혀 차원이 달랐다.

기원전 5000년경 나일 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했던 고대 이집트에 ' 문명’이 꽃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오래 전 고대 이집트 땅의 기후는 서늘한 온도와 온화한 온도 사이를 오고 가다   8월이면 나일 강이 범람해 땅이 비옥해졌다.

천혜의 기후 덕택으로 씨앗만 뿌리면 곡식들이 풍성하게 열렸고  매년 풍년이 계속되니 영토는 점점 확장 되어 바다 건너 유럽 대륙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가 발전했다.

하지만  기원전 2000년경 부터  온화했던 기후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면서  찌는 듯한 무더위로 바뀌었고, 비가 내리지 않아 강줄기가 말라버리고 나무와 식물들이 죽자 땅이 점점 사막으로 변했다.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발생하자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굶주린 부모들 중에서 자식까지  잡아먹는 일까지 생겼을 정도로 사회의 모든 규범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고대 이집트인들은  살던 땅을 버리고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강대국의 노예로 팔려갔고 찬란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은 거친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로 효모 빵을 만들었고 맥주를 음료 처럼 마셨던 이집트인들은 기후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모든 계층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였다. 

밖을 나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역대급 무더위와 폭염의 기세에 전국이 펄펄 끓어 오르고 있다.

이 끔찍한 폭염이 지속적으로 순환 구조로  이어져서 겨울의 길이가 점점 짧아 지게 되면 한강 물도 말라 버리고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 마저  버텨 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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