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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흔히들 종교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바라고 원했던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집착과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설파 하고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인간은 배가 고프면 눈을 부릅뜨고 먹을 것을 찾아  배를 채우듯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에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위대한 사상이란 무엇입니까?'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한다는 것, 바로 그거야말로 위대한 사상 아니겠니?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정말 가장 위대한 길을 말씀하신 겁니까?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매우 위대한 것이지. 그래, 대단히 위대한 거야.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은 아니다. 위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2차적인 것이며, 바로 이 순간에만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이란 배가 부르게 되면 지난날의 일은 회상하지 않는다. 회상은 커녕 바로 그 자리에서 ,자,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 하는 법이다. 그러니 문제는 영원히 미해결로 남게 되는 거지.'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미성년>의 주인공 아르카디와는 소년의 친부 벨르실로프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본질인 욕망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기에 단순히 물질적인 충족 만으로 해결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고 욕망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제도가 그 사회에 소속된 모든 인간들의 삶을 보장 해주지 못한다.

하루에 한 번 글로벌 커피체인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편의점의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 그리고 봉지 커피를 털어 마시는 것의 행복의 무게는 카드로 지불한 금액의 크기와 상관 없다. 

재벌도 요플레 뚜껑을 햝아 먹는다고 대답 했듯이. 이것 저것의 가격의 크기에 행복의 크기가 좌우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경우는 다르다. 고통은 조건과 상관 없이 우리가 수용하고 지불하는 비용의 크기가 부에 비례하기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힘겨운 고통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내가 겪는 수준만큼 고통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지.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야. 게다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데 아주 인색하거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모든 고통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다. 타인이 내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의 무게는 오로지 개개인만이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진자처럼 왔다 갔다는 운명인 것이다.

인생은 빠르게 변한다. 인생은 한 순간에 변한다. 

당신이 앉은 저녁 식탁에서 인생은 끝나기도 한다.

Life changes fast. Life changes in the instant. 

You sit down to dinner and life as you know it ends.  

조앤 디디온(193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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