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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유홍준
  • 32,400원 (10%1,800)
  • 2025-09-22
  • : 19,992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외세 침략과 약탈로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재와 유물이 화재나 도굴, 강탈로 소실 되었다.

1782년 정조가 강화도 행궁(行宮·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에 창덕궁 규장각의 부속시설로 설치했던 왕실 자료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1866년 철종 재임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귀중 도서 340여 권과 지도 갑옷 등을 약탈해갔다.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을 약탈 했을 당시  외규장각에는 당시 조선 역대 왕의 글과 글씨, 의궤와 주요 서적, 왕실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도서는 대략  6000여 권 정도 보관 하고 있었지만 귀중한 보물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사라졌다.

1991년 서울대가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요청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간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측에서 지속적인 반환 거부로 협상이 결렬 되었지만 경제적 실무 협약을 맺으면서 협상을 이어가다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의궤 대여’(5년마다 다시 계약하는 대여 방식)에 합의해서 현재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관람 할 수 있게 되었다.19세기 말 무렵 부터 20세기 전반기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수난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서 사라진 문화재와 유물들이 국외로 반출되어 현재까지 해외에 남아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공식 확인된 것만 약 25만 6천여 점에 달한다.

이 중 전체의 43.2%인 11만 6백여 점이 일본에 집중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압도적인 규모의 문화재 유출이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암암리에  자행 되었던 약탈과 도굴로 찾아낸 문화재들이  밀반출되어 개인이 은닉한 유물까지 합치면 실제 유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29개국 박물관·미술관 등에 분산된 한국 문화유산은 총 256,190점으로  일본이  110,611점에 달하는 한국의 문화재를 자국의 박물관과 사찰, 기타 개인 소장품으로 등록 시켜 놓았다.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이었던 도자기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목적이 조선의 도공을 납치 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한반도 전역을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해갔다.

이토 히로부미도 고려청자를 손에 넣자 마자 자신의 방에 모셔 두었을 만큼 일본의 한국 청자 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병적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유물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고문헌(서적류), 고분 출토 장신구 및 불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고려청자 수집 열풍이 불면서 무덤을 파헤치는 잔인한 도굴이 성행했다.

도굴에서 파낸 청자는 중간 상인들을 거쳐서 비싼 가격에 해외 컬렉터에게 넘겨 졌다.

1883년 조영통상조약 체결 이후 한국에 들어온 영국의 외교관, 의사, 선교사들은 조선 왕실 및 고위층과 교류하며 엄청난 양의 미술품과 민속품을 합법·비합법적으로 사들였는데 영국인들은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에 탐복해서 외교관·자산가·박물관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고려청자를 필두로 한 예술품과 민속품을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한국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애국적 수집가와 후원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구입한 한국의  청자를 국가에 조건 없이 기증 해서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호암 미술관 기타 지방 국립과 사립 미술관에서 청자를 볼 수 있다.

일본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 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68,961점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선교나 목회 활동으로 한국에 체류 했던 종교인들과 외교 사절단으로 방문해서 장기 체류 했던 해외 관료들과 대사관 근무를 했던 외교관들 그리고 방대한 자금으로 컬렉션을 갖고 있던 수집가들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한국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손에 넣었다.

1909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독일 가톨릭 순교 수도회인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깊이 연구했는데 이들 중에서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은 일제에 의해 한국 전통문화가 말살되고 헐값에 팔려 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조선의 일상 유물, 민속품, 양반가의 가구 등을 대거 수집하여 독일로 가져가 보존했는데 베버 총원장의 수집품 중에 조선 최고의 천재 화가 중 한 명인 겸재 정선 화첩이 있었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겸재 정선 화첩(보물)'은 수도원 측에서  이 유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난 2005년 한국(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 조건 없이 영구 기탁 형식으로 반환해 주었지만 여전히 독일 수도원에 한국의  많은 민속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의 문화재를 끌어 모은 영국은  서울 인사동으로 흘러들어 온 한국 유물과  일본, 중국의 골동품 시장에 유출된 문화재를 대영 박물관 예산으로 직접 대량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보급 유물인 고려시대 '나전칠기 경함'이나 '화엄경변상도', 삼국시대 금귀걸이 등이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편입되었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초정밀 공예품인 고려 나전칠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 20여 점밖에 남아있지 않은 초희귀 유물품이 되었다. 20여점 중에 7점이 현재 일본 도교 국립 박물관에 국보로 소장 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정교한 기법을 이어받으면서도 조선 공예가들의 독창성이 꽃피기 시작한 조선 전·중기(15~16세기) 나전함은 임진왜란 당시 약탈 당하거나 화재로 소실 되어서 현재  전 세계에 단 4점만 남아 있는 초희귀 유물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조선 중기에 제작되었고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023년 일본에서 환수된 나전함 (1점)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일본의 한 개인 수집가에게 사들인  16세기 경에 제작된  나전함이다.


 8~10년 정도 자라야 옻액을 채취할 수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하고 걸러 내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옻칠로 가공한 상자에 4만 5천여 자개조각을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오린 후, 아교를 바른 바탕 위에 칼로 끊어가며 붙여 장식하는 끊음질 기법과 타찰법으로 무늬의 균열을 내어 다양한 형태의 연꽃과 넝쿨 줄기 밤하늘을 수 놓은 별빛 처럼 새겨져 있다.

유럽과 이슬람권 등 다른 문화권에도 조개껍데기를 가구나 목재 상자 표면에 박아 넣는 장식(Inlay) 기법은  존재했다.

하지만 조개껍데기를  실처럼 가늘게 자르고(끊음질) 의도적으로 깨뜨려(타찰법) 보석처럼 수놓는 기법은 한국(조선)이 세계에서 유일한 독보적인 기술이었다.연꽃 봉오리, 잎받침이 있는 연꽃, 활짝 핀 연꽃들이  뒤얽힌 넝쿨 줄기와 이파리, 칠보무늬의 장식이 언뜻 보면 별 것이 아닌 듯한 상자로 보이는 나전 칠 연꽃넝쿨무늬 상자는 나라를 잃은 우리 조상들 처럼  400년 동안 해외를 유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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