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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미국을 기준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빅맥 값을 비교한 빅맥지수(Big Mac Index)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 처음 만들어서 매년 1월과 7월에 발표되어왔다.

지금까지 빅맥지수는 각 나라의 물가 수준과 화폐 가치를 평가하는 경제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스타벅스 커피값을 비교하는 '라테 지수', 이케아 가구 제품 가격을 비교하는 '이케아 지수' 등과 같이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 수 천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표 상품들의 가격 책정 변동에 따라 나라별 체감 물가 지수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명 커피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는 맥도날드 매장 보다 모퉁이만 돌아가면 간판이 보이는 별다방 가격 지수에 더 민감하다.

 하지만 점심 단골 메뉴 한 끼를 만 원으로 해결 하기 힘들 정도로 물가가 치솟으니 가성비 좋은 커피를 찾아 마시거나 인스턴트 스틱 커피로 휴대 하는 성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커피 가격 지출을 줄일 수는 있다해도  물가가 급등할 때 마다 가성비 반찬으로 식탁을 지키던 김 가격이 치솟아서 즐겨 사 먹던 김밥이 가격이 두 배로 급등하거나 조미김 한통에 김이 10장에서 8장으로 줄어 들게 되면  이보다 더 속상할 수가 없다.

기후 이상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해서 발생하는 적조현상으로 인해 김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한국의 김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싹 쓸어가는 대표적인 상품이고 K푸드 열풍에 냉동 김밥 수출양이 대폭 늘어나서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게 되어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은  그동안 반 세기 넘게  세계 김 수출의 60퍼센트를 장악했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은 7세기 무렵 부터  미역보다 얇은 바다말을 얇게 펼쳐 말려 먹었다. 이 바다말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던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 에도에 입성하고 나서 부터였다.

도쿠가와 가문은 안정된 식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에도성 앞에 어장을 조성했다.

 그 시절에 생겨난 어장은 가니스기, 혼시바. 시나가와로 점차 이 어장이 번성하면서 주변에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장과 상권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시나가와가 주변 포구를 총괄 하는 중심 어장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김 양식을 재배 했다.

17세기 에도에 시나가와에서 생산한 김은 색은 붉고 형태는 닭 벼슬처럼 작고 비린내가 난다 해서 노리(海苔)라 불렀다.

 이 시절에 김을 가공하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사찰에 종이를 대량 공급했던 아사쿠사 제조자로 당시 아사쿠사는 헌 종이를 수거 해서 재생종이를 생산했던 수공업체였다. 종이를 가공했던 수공업자가 미역보다 가는 김을 종이처럼 건조 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다에서 수거한 바다말을 담수에 섞어 대나무 판지에 얇게 펴서 바람에 건조 시키고 나서 숯불에 살짝 구우니 비린 냄새가 사라졌고 태운 종이처럼 입 속에서 바삭거리다 스르르 녹아 내리자 일본인들은 밥에 싸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공한 김을 조미한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에도 시대 일본인들은 김을  바다 채소라 불렀다.

 일본이 김을 종이처럼 얇게 가공 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은 13세기 말인 신라 시대 부터 바다에서 김을 건져서 건조 시켜 먹었다. 

삼국 시대 때 김은 혼인을 앞둔 왕의 폐백 품목 중 하나였고  조선 시대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검은 바다풀이였다.

이 검은 바다풀이 김이라 불리게 된 건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자신의 수라상에 오른 검은 바다풀을 맛있게 먹고 무슨 음식인지 묻자 한 신하가 음식 이름은 모르고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란 자가 만든 음식이라 답했다. 이후 조선 왕실에서는 김여익이 만든 바다풀이라 해서 그의 성을 따 ‘김(金)’이라 부르게 했다.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김밥의 기원은 일본 마키스시(巻き寿司)의 일종인 '노리마키(海苔巻き)'에서 왔다. 

에도 사람들은  식초와 설탕을 섞어 넣은 밥에 김을 싸서 먹기 시작했고 각종 속재료를 넣고 대나무발로 말아 원통형으로 만든 '후토마키(太巻き)'는 메이지 시대 들어서면서 부터 만들어 먹었다. 

메이지 시대때 '후토마키(太巻き)'의 속재료는 생선회였다.

1930년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들어 온 일본식 김밥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 되어서 당근과 계란, 우엉, 햄, 깻잎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됐다.

일본은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노리마키의 기본이 되는 식초와 설탕으로 밥에 초절임을 하는 방식이 사라졌고 현재 일본 식당에서 파는 김밥은  미원과 소금, 참기름을 넣고 속재료도 한국 처럼 다양하지 않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김과  즐겨 먹는 김밥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유래 되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한국의 김밥은  일본의 라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재료와 뛰어난 조리 기술로  다채롭게 발전 시켜 나간 음식이다.

햄버거 한 개 먹은 포만감 보다  김밥 몇 줄을 먹은 포만감은 세계 물가 지수 지표로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김밥은  한국인에게 무척 특별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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