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1월 19일 82세에 접어든 톨스토이는 전날 밤 자신의 일기장에 아내의 잔소리와 폭언에 더 이상 집에 있지 못할 정도로 견딜 수 없다며 죽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다음날 새벽, 가족 모두 깊은 잠이 든 시각에 홀로 침상에서 일어난 톨스토이는 하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그머니 집을 나선다.
대문호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자신의 대 저택에서 꼬박 반나절을 걸어야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아스타포포 기차역으로 82세의 톨스토이는 추위에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져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급히 달려온 톨스토이의 주치의 마코비츠키는 사망을 확인하고 마지막 머리맡에 단 한 권의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올려 놓았다.
살아 생전 톨스토이는 “세상에 있는 책 모두를 불 질러버리더라도 도스토옙스키는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를 흠모했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 부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으로 부터 존경과 대 문호로 추앙 받고 있었던 톨스토이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시베리아 유형지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박장을 전전하다 간질환으로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 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난 도스토옙프스키
일평생 족쇄 같은 운명과 맞서 싸웠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4절)
자신의 모든 소설에는 신앙에 대한 고뇌를 깊이 깔아 놓은 도스토옙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가 남긴 작품들 중에서 가장 밀도 높게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기독교 소설’로 분류하지 않는다.
종교와 언어, 국적과 사상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소설이 된 이유는 ‘죄와 벌’ 즉,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작풍에는 5명의 문제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탐욕스럽고 방탕한 노인이고 큰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닮아 음탕하면서 한편으로 고결함을 동경하는 순수함을 품고 있다.
둘째 아들 이반은 대학을 졸업해서 주변에서 인텔리겐챠로 불리는 지식인으로 “천국행 입장권을 반납하겠다”고 말하는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다.
셋째 아들 알렉세이는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매우 종교적인 인물이다.
표도르와 백치 여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간질을 앓고 있다.
스메르자코프는 속마음을 숨기며 말 수가 적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신을 사생아로 태어나게 한 아버지 표도르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를 품고 있다.
음흉한 아버지 표도르가 장남 드미트리의 연인 그루센카라에게 연정을 품으면서 부자 사이에 증오심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 가던 중 표도르는 죽은 채 발견된다.
"신이 만든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이반의 말에 세뇌 된 스메르자코프가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는 간질 발작 때문에 혐의에서 벗어난다.
대신 평소에 아버지와 크게 반목 했던 장남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무신론자인 이반에게 영향을 받은 스메르자코프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하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증오했던 마음의 죄를 인정하듯 순순히 20년 형을 선고 받는다.
선과 악의 구도가 선명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작품은 단순한 집안 싸움처럼 보이는 줄거리 구도 속에 늙음과 젊음, 사랑과 애욕, 치정과 불륜 그리고 무신론과 유신론 등 서로 대립하는 가치들 간의 갈등이 속속들이 아로 새겨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점 만은 마음 속으로 감히 비웃지 못할 겁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대 대 문호로 불렸던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걸 여러 가정의 서로 다른 삶의 양상을 통해 보여줬지만 도스토옙프스키는 평생 운명과 싸운 작가 답게 작품 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내 일평생에 대해 스스로를 응징 하노라. 내 일생을 벌하노라.”
스스로를 응징 하겠다면서도 모순된 삶을 살며 죄를 저지르는 우리 인간
이 세상 누가 욕망과 고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SNS 세상에서는 잘 먹고,잘 놀고, 즐겁게 삶을 영위하는 이들로 넘쳐 나고 한 편으로 나날이 치솟고 있는 물가에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고 있는 서민들의 유리 지갑 속은 텅 비어 가고 있다.
가난한 하급관리와 고아가 된 불쌍한 소녀의 애처로운 정신적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편지 형태로 엮은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이자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의 정수를 담은 <가난한 사람들>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느냐고요?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들을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가난한 사람들>중에서
지난날 방탕하고 절제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스스로 엄격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기 욕구와 절제를 갖고 끊임없는 반성으로 자기 성찰을 유지했으면서도 가족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톨스토이는 빈손으로 집을 나가 아스타포보 정거장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장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난 내가 조금씩 산을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었던 거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발밑에서 진짜 삶은 멀어지고 있었던 거지.”
-1910.11.19 톨스토이(1828-1910)

모순적인 인간의 삶 이것은 곧 모두의 한계이자 우리가 신앙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면서 대 문호가 마지막 곁에 두고 싶었던 그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가 영원한 고전이 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