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미합중국은 세계 제 1의 군사력을 갖춘 대영제국의 통치 지배권을 스스로 떨쳐낸 첫 번째 나라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876년, 5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조선 왕조는 강화도에서 일본과 굴욕의 조약을 체결 하면서 식민지 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19세기말 한반도의 주변 국가들이 산업 문명으로 사회 전체가 개편 되고 있을 때 유교 문화의 악습과 폐해로 인해 문명의 대 전환기에 조선은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나라를 잃고 36년 동안 국민을 섬나라 손아귀에 내던져 버렸다.
반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은 산업문명의 표준인 연방 헌법 체제를 반포 하며 사회 전체 시스템을 혁신적이게 바꿔나갔고 결국 막강한 제국 이였던 영국과 프랑스를 누르고 산업 문명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구상의 모든 농업문명국가들이 사라져가는 데는 100년 이상 소요되었고 1894년 동학 혁명이 일어나고,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대청제국이 와해 되고 난지 불과 10년도 채 안된 시간에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 종전 한지 10년 만인 1924년 터키 혁명으로 오스만제국이 붕괴 되었다.
20세기 2차례 세계 대전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불화산의 전쟁과 내란이 발발했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첨단 기술과 의학 발전을 이룩한 인류는 물류 대 혁신을 비롯해 인공위성 수신을 통한 광역 통신망으로 세계는 이 전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소통해 나갔다.
21세기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3년의 주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AI 기술을 탑재한 21세기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 시대의 한 축은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이전 시대가 이룩해 놓았던 산업 문명이 붕괴되고 있고 또 다른 축은 20세기 용감한 선각자들이 북극 항로를 개척해 나가듯 새로운 문명이 태동 하고 있다.
그 문명은 바로 생성형 AI가 주도하는 디지털 혁명으로 이 혁명은 기존의 산업 문명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했던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에 의한 생산력의 항구적인 초가속적 시스템이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투입되고 있다.
0.1초 만에 결과물을 내놓는 AI가 그동안 인간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해 놓은 문명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꿔 놓고 있다.
앞으로 30년, 산업 문명의 모든 패러다임이 폐기 처분 될 운명에 처해 있다.
AI 시대에 한반도의 정치인들은 19세기 구한말 조선 사대부들처럼 국가를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명료화하고 법제화 시킨 시스템 구축은 단 1초도 기획하지 않고 자기들의 밥그릇 다툼만 벌이는데 열중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주도 했던 서양 세력은 몽테스키외의 민주주의와 로크의 사회계약처럼 기술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철학으로 자유·평등·삼권분립·주권을 법제화하고 제도화 시켰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이념과 제도로 국가 기반틀을 마련했고 세계화에 편입될 수 있었다.
글로벌 AI 기업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이 기업들은 이미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있고 현재 한국의 직업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AI기술로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직무를 만들어내면서 이러한 일자리 변화는 장기적으로 업무역할에 대한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 기술의 발전의 격변기 시대에 인간이 해왔던 직업군은 사라졌어도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하면서 기술은 인간의 역할을 없애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오늘날 AI 역시 이러한 기술 변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산업혁명의 기계화와 함께 자동차의 등장과 컴퓨터의 보급으로 문명의 발전을 빛의 속도로 이루워낸 사피엔스에게 AI의 등장으로 인류 노동 시장의 지각 변동, 즉 '문명적 인력 교체' 시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2026년 AI와 공존하는 시대를 맞이한 인류가 직시해야 할 첫 번째 현실은 AI를 도구로 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리를 대체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과 사무직, 기술직, 연구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현장에서도 빠른 속도로 AI와 협업 하면서 이전과 다른 속도와 영역으로 무한 확장 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고유의 영역으로 평가 받고 있었던 창작 분야마저도 눈깜짝 할 사이에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창작을 논한다는 것은 더 이상 창작물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여전히 창작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 가를 묻는 일이 되었다.
동굴 생활을 하며 벽화에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려 나갔던 사피엔스는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기존의 음악과 문장, 이미지와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그 위에 새로운 감각을 덧붙여왔다.
즉 그동안 인간이 이룩한 창작은 이전 세대가 이뤄 놓은 결과물을 끊임없이 재 창조 해나갔고 개개인의 개성과 시대에 의미에 맞게 끊임없이 변주 해 나갔다.
AI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창작 과정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작가는 누구인가?’
단순히 손을 움직인 사람이 작가인가, 아니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체를 설계한 사람이 작가일까?
지난 2023년 독일 작가가 AI 이미지로 국제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뒤 “AI와 예술의 경계를 논의하기 위한 의도적 문제 제기였다”며 스스로 상을 반납한 사례가 있었고 일본에서 열린 한 사진공모전에서 대상 작품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이미지였음이 드러나 수상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었다.
예술계의 반발과 법적 논쟁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AI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이 무단으로 수집·복제되는 게 침해에 해당하는지의 논의도 여전히 뜨겁다.
현재 일부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은 “AI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며 기술 도입을 거부했고, 여러 공모전은 AI 활용 작품의 출품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 제작이 가장 활발한 미국 영화계에서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은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고 음악계에선 순수 AI 생성곡을 그래미 시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출판계는 소설 표지를 AI로 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상이 취소되기도 하고 AI 대량으로 찍어내는 일명 딸각 출판물은 공공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창작물’을 지적 재산권으로 보호 하고 있는 저작권법에 의하면 인간의 개입이나 지시 편집없이 AI가 스스로 만들어 낸 산출물은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
단 AI 가 생성해 낸 결과물과 이미지에 인간의 창의적 편집이나 표현을 더한 경우 이에 대해 기여한 부분에 한해 보호가 가능하다.
앞선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던 산업혁명의 시기에도 혼돈과 논란이 일어 났지만 결국 더 많은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었고, 인류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따라서 기술은 때로는 인간의 삶을 뒤흔들기도 하지만, 그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일본 사진전 사례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대상 작품은 개구리 머리 위에 잠자리가 앉은 순간을 포착한 이미지였다.
그 장면을 실제 촬영하지 않고 AI로 생성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고, AI에게 이미지 생성 구현을 지시해서,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를 선택한 주체는 인간 사진가였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도 인간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우연성, 맥락의 층위는 쉽게 대체되지 않듯이 인간의 상상력과 AI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협업의 작품도 창의성의 무한 확장을 펼쳐 보일 수 있다.
AI가 인간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면서 창작은 더 이상 고독한 1인의 작업이 아닌 ‘큐레이터’이자 ‘편집자’, ‘감정의 해석자’이자 시대의 흐름을 매끄럽게 읽어나가는 나래이터가 되고 있다.
AI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며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기술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공존하며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넓혀 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제도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저작권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창작자는 AI를 새로운 도구로 활용해야 하며, 사회는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예술의 가치를 존중할 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다.
‘AI와 더불어 사느냐, 위협으로만 여기다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화두인 시대에 나는 삶의 방향을 더불어 사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나는 매일 책을 읽으며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혀 나가면서 시간을 들여 문장을 쓰고, 기획한 콘텐츠에 맞는 영상에 삽입할 시퀀스를 기획하며 스크립트를 구상하고 있다.
내가 기획한 것을 토대로 AI와 춤을 추듯 유연하게 협력하면서도 창작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직접 기획하고 스크립트를 짜고 영상을 편집해서 ‘내가 만든 영상’을 세상에 내놓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영상 제작을 의뢰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영상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들여 만들어낸 창작물을 통해 맛보게 되는 성취감 때문이다.
마치 전시를 끝마친 화가가 작업실 텅 빈 캔버스로 돌아가 다시 붓을 쥐듯이 아무런 대가 없이 시작되는 창작 작업에서 자아를 잊을 정도로 몰입하다 마침내 완성했을 때 찾아오는 형언 할 수 없는 성취감을 맛보는 순간 나라는 인간은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 할 이유를 찾게 되고 이 깨달음으로 인해 다시 창작이라는 고귀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AI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조합해 ‘생성’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될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지지 못한다.
수백 개의 멜로디 중 사람의 가슴에 남을 단 하나의 음악을 고르는 안목과 무수히 쏟아지는 영상물 속에 빛나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고 있는 인간만이 창작의 방향을 설정 할 수 있고 이 행위는 오직 인간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만 탄생한다.
창작은 생존을 넘어 지구상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어떻게 성장하며, 어떻게 세상과 연결 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간다운 방식이다.

AI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선택한 나는 춤을 추듯 유연하게 AI와 협력하면서도 창작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를 발휘 하기 위해 매일 나만의 'AI 팩토리(AI Factory)'를 가동 시켜서 단순히 AI가 주는 정보를 소비만 하는 '소비자'아닌 AI를 도구 삼아 새로운 가치와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전문 크리에이터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