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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서울 광화문 수많은 빌딩 사이에 구부정한 자세로 망치를 천천히 내리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다.

이 조각상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망치질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쉰다.

1979년에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된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10년 뒤 미국 워싱턴에 ‘서류가방을 든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도심 한 가운데 설치 되었지만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박물관 옆으로 옮겨졌다.

서류 가방을 든  조각상과 달리 망치질 하는 조각상 전 세계 11개국 도시에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 중에서 서울 광화문 흥국 생명 앞에 세워진 조각상이 가장 크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망치질 하는 사람을 조각한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용접으로 추상 조각을 만들고 부터 철제 조각물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다.

보로프스키가 대학을 마쳤던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사회 저명 인사들과 유명인들의 잇따른 암살, 베트남 전쟁에 반대 하는 반전 시위, 인종 간의 갈등과 부의 불평등으로 사회 곳곳은 시한 폭탄이 매일 터졌던 혼돈의 시기 였다.

이런 혼돈의 시기와 달리 정작 예술계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이 가득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 되어 어떤 재료로 작업을 해도 부유한 자산가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전시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창작 환경이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정작 브로프스키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떤 창작물도 생산 할 수 없게 된 그는 매일 두 세 시간씩 앉아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 했다.

첫 날 1에서 1000까지 숫자를 쓰기 시작한 브로프스키는 다음 날 1001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자식이  창작은 하지 않고 매일 숫자만 세고 있다며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만 종이에 적었던 브로프스키는 2년 동안 지속한 후에야 마침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 부터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그 날 센 숫자와 작업을 연결 시켜서 서명 대신 그 날의 마지막 숫자를 적어 나갔다.

2년 동안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를 적은 브로프스키는 5년 동안 조각품을 만들면서 완성품을 전시 할 때 1에서 234만6502까지가 적힌 종이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망치질 하는 조각상'에 새겨진 숫자는 ‘2,669,857’이다.

이 숫자는 그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숱한 망치질을 한 회수에 해당할 것이다.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글쓰기는 그대를 위한 것이고, 그대는 그대를 위한 것이며, 그대의 몸은 그대의 것이니, 그것을 취하라. 나는 그대가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알고 있다.

-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 >중에서 


브로프스키가 ‘2,669,857’의 망치질로 22m, 55t에 육박하는 거대 조각상을 탄생 시켰고 나는 지난 2023년 1월 12일 부터 지금까지 1110일 동안 2010개의 글을 투비컨티뉴드에서 발행했다.

지난 3년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하루에 하루에 두 편 씩 자정을 넘기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고 오전 10시에는 연재 시리즈 노트를 발행하는 동안  한 회  당 글자 수가 700자 이하로 써 본 적이 없다. 

그동안 20개 시리즈를 발행 하면서 회 당 4천에서 5천을 넘는 분량의 글을 썼고 창작 소설 <그 해 여름의 수수께끼>와 100편 분량의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회는 3만 5천 자를 넘게 쓰고 대장정의 마무리를 했다.

내가 지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써온 글자수를 종이에 새겨서 발행 해 본다면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는 빌딩 높이 만큼 될 것이다.

빌딩 높이 만큼 썼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베스트셀러 한 권 판매량 인세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노동자의 최저 하루 임금 수준에 달하는 보상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의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을 채 넘지 않는다.

아침 출근 길에 나서자 마자 사회라는 챗바퀴 속으로 들어 가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24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유충에서 번데기가 되어서 날개 짓을 펴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고, 하루 반나절 동안 울어 대는 매미들도 8일 동안의 생을 다하기 위해 강렬한 태양 빛을 받으며 울어 댄다.

세상은 언제 부터인가, 영상의 시대, '말의 시대'가 되어 여기 저기 다양한 플랫폼에 자신의 얼굴이나, 목소리, 손목만 내놓는 영상물로 넘쳐 나고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말을 잘하는 사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부각 되어 소위 잘나가는 사람, 주목을 받는 인재로 인정 받고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의 변화로 인해  1인 미디어 채널로 누구나 자유롭게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사회가 되었다.

직장이라는 곳은 세가지 사항에 부합되는 인재 상相을 찾아 발탁한다.

 그 세가지 사항에 해당하는 인재란, 각종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석, 해결을 잘 하는 이들로  문제 제기를 잘하고 분석을 잘하면 똑똑한 인재로 각인 되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나아가 해결을 잘하면 유능한 인재로 부각된다.

반면, 글을 잘 쓰는 이들은 어떤 조직에 가서도 그림자 역할과 수행을 도맡으며 승진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펜보다 입, 말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시대에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글 속에는 생각이 담기고 삶이 담긴다.

내가 처음 투비에 글을 쓸 때 부터 꾸준하게 매일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보이지 않는 구독자들 덕분에 매일 망치를 들고 망치질을 하듯이 자판기를 1110일 동안 두드릴 수 있었다.

매일 투비에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발행 되고 있지만 투비 메인 화면에서 구분해 놓은 태그들을 눌러 봐도 조회수가 낮은 글들은 피드백 화면에서 쉽게 찾기 힘들고 언제 부터인가 이곳 창작 플랫폼은 인적이 드물다 못해 어떤 글을 써도 조회수 10 에서 20을 넘기 힘들어졌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와 비교 할 수 없는 편리함과 기술이 완비된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지만 행복의 크기는 이전 세대들에 비해 더 작아지고 줄어 들었다.

세상에 모든 이들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듯이 우리는 자신이 살아 온 만큼의 삶의 경험, 생각한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영상을 제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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