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오스트리아와 합동 제국이 되기 전 헝가리는 크로아티아 왕국과 트란실바니아공국까지 지배 하면서 중부 유럽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군림 하고 있었다.
헝가리의 강한 통치력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패막이가 되어서 루마니아의 중심부가 되는 왈라키아-몰다비아공국과 보스니아, 루멜리아, 실리스트르 지역(이 지방은 1차 대전 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가 되었다)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이 유럽 중심으로 진격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은 중세시대 부터 존재 했던 불가리아왕국, 세르비아왕국, 보스니아 왕국의 땅을 차지 하면서 거친 산악 지대 위에 세워진 몬테네그로 까지 통치 하고 있었지만 이들 왕국에 대해 강한 통치를 하지 않고 세금만 거둬 들였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왕국인 헝가리와의 전쟁에 용병으로 나선 이들에게는 토지권을 주는 유화 정책을 펼쳤다.
자잘하게 쪼개져 있는 남부 유럽 국가의 자원 용병에 힘을 얻은 오스만제국은 1526년부터 1680년대까지 중부 헝가리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고, 여기를 발판으로 북쪽의 합스부르크 영토를 침입했지만 성벽에 둘러 싸인 요새 도시 빈을 함락하는데 실패 한다.
서유럽 정복 전쟁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 군대의 제복을 입고 싸웠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대한 존경심이나 제국을 향한 애국심은 눈곱 만치도 없었고 이슬람으로 종교를 개종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존재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만 군대에서 받은 돈을 받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의 통합성의 뿌리는 서유럽의 종교나 민족성에 영향을 받아도 근본적인 민족과 종교를 바꾸지 못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로마 시대를 제외 하고 단 한 번도 통합된 적이 없었고 1000년 경에 도래한 기독교는 라틴 기독교와 그리스 기독교 두 형태로 나눠져서 민족의 토속 신앙과 결합한 독특한 종교로 발전 되었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동유럽은 서유럽의 문화나 종교에 뒤섞이지 않은 변방 지역의 미지의 땅으로 오랜 전쟁으로 인구 이동의 물결이 일어나서 한 집안에 기독교와 정교회 교인, 유대교, 무슬림교가 뒤섞여 있는 다종교 사회 구성원을 이루고 있었다.

1880년 유럽 중동부 지역에는 네 개의 국가만 존재 했다.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프로이센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이 네 개의 국가들 영토 내에서 과거의 정치적 경계를 나눠보면 북쪽에는 1795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분할로 소멸된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왕국이 있었다.
남쪽에는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 소유가 된 헝가리 왕국과 보헤미아왕국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남부 유럽 지역의 사람들의 운명을 완전히 통제 했던 국가는 없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합동 제국으로 거대한 영토를 차지 하면서 지난 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행정 자치 구역이 되어 간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이 남부 유럽 지역을 하나로 통합 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경제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남부 유럽 지역에 주변국 종교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고 종교와 메시아 전통에 익숙했던 시민들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세속적인 해방을 갈망 했다.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이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을 하는 동안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고 집집마다 정제된 깨끗한 수도물이 쏟아지는 수도관이 설치 되었고 거리마다 환한 조명등이 켜졌다.
제국이 밝힌 조명등은 멀리 떨어진 통치 지역인 르비우의 집집마다 등유 램프가 설치 되었고 루마니아 땅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유럽의 첫 국가가 되었다.
철로가 유럽 대륙을 종횡 무진 달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물이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고 리투아니아의 삼림지대에서 벌목된 목재가 바다 건너 영국의 건설 붐을 일으키게 된다.
목재업으로 곡물업으로 벼락 부자가 된 이들이 남부 유럽 지역에 등장 하면서 금융 시장에 대 호황이 이어지는 동안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은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하며 민족들 사이를 이간질 하며 분열 시켰다.
민족의 분열은 테러범을 양성해서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대의로 둔갑했다.
20세기 유럽이 눈부신 과학발전과 기술 혁명으로 빈과 부다페스트에 일급 호텔과 경마장, 무도회장 ,카지노들이 들어서는 동안 남부 유럽에 온갖 종교인들과 사상가들 혁명가들이 몰려 들었다.
그 결과 파시즘과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움트는 토양이 되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평화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테러범들을 양성 했다.
다인종, 다종교의 조각보처럼 꿰 맞춰진 이 지역은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으로 인해 가장 밑바닥부터 파괴 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모이자 강력한 집단 정체성이 종교보다 더 강한 민족주의를 일으키며 제국의 운명을 뒤 흔들었다.

만일 타임 머신을 타고 1914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전차에 올라타서 1번지부터 19번지를 지나는 정거장 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칠 수 있다.
가장 먼저 제국의 최고위 공무원이자 통치자인 황제 요제프의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궁을 시작으로 베르크가세에 있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집에 도착한 후 길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20세기 세계 대전 발발에 큰 기여를 한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서부역으로 향하는 전차에 올라타면 그루지아 출신의 농노 스탈린이 은신하고 있는 주택지구를 지나 레온 브론슈타인이라는 가명으로 러시아 사회주의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레프 트로츠키가 살고 있는 부촌 지역인 슐로스스트라세에 다다르면 황족들과 황실 가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쇤부룬 지구까지 탐방 할 수 있다.
쇤부룬 지구에는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출신 청년의 총에 맞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세계 1차 대전 발발의 불씨를 터지게 만든 합스부르크 제국의 2인자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집무실이 있는 벨베데레 궁을 지나 거대한 궁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원을 가로 질러 가면 군대에 징집 되지 않으려고 친척집 지하에 은신하고 있는 스물 넷의 화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를 만날 수 있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20세기는 심리학의 세기 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의학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정밀하게 측정한 작업을 시도 하며 여러 임상 실험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 발달의 추이를 심리학적으로 치료하면서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지각과 감각, 주의력, 기억, 의사 결정을 포괄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이터를 구축해 나갔다.

20세기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세기의 인물들을 일렬로 늘어 놓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유산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 보면 놀랍도록 21세기 현재 시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0년전의 유럽은 어제 마차에 탔던 이들이 오늘은 전차를 타고 출근 했고 휴가 때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를 여행했고 전화선이 연결 되어 밖을 나가지 않고도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연락 할 수 있었다.

중부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헝가리는 유럽에서 가장 드넓은 영토를 차지 하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에 여러 차례 맞서 혁명과 봉기를 일으켰지만 전장터의 수장들이 차례 차례 참수형을 당하고 나서 굴욕적인 타협 끝에 제국의 형제가 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잠재적 봉기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보다 먼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을 개통 시켰고 독일에 맞먹을 정도로 열차선을 건설할 수 있게 했다.
헝가리의 산업 혁명을 주도 했던 지식인들과 엘리트 가문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과 대학과 건축 대학을 설립해서 도시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1890년대부터 부다페스트에는 환자 긴급구호차가 출동했고 소방차도 프랑스, 독일 보다 앞선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행 하며 도시의 안전을 책임졌다.
1900년대부터 수도에 전화 케이블 선이 깔렸고 도나우 강물은 전 지역에 깔린 수도 공급용 파이프를 타고 흘러 들어갔고 배관으로 공급하는 가스로 시민들은 집에서 손쉽게 요리 할 수 있게 되었다.
도로가 정비 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생생 달리는 자동차가 운행 되고 전차선이 들어서고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보와 우편을 받아 보고, 전화로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된 시대는 스마트 폰 하나로 연결 된 지금의 시대 만큼 매일 매일 놀라움으로 가득 찬 기대감으로 넘쳤다.
하루 아침에 말이 모는 마차에서 디젤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등유가 아닌 전기 불로 어둠을 밝히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었던 20세기는 눈부신 기술 과학 혁명의 시대였다.
하지만 인공 지능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현 시대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유럽 대륙에 가본다면 가장 먼저 낯선 언어와 방언에 의사 소통에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고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지정학적 질서와 사회 제도와 규범에 놀라게 될 것이고 현재와 너무나도 차이가 큰 기술과 의학 수준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환경 적응에 탁월한 인간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 이유는 문명의 발달과 눈부신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원초적 욕구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탐욕은 어느 시대에 어떤 세대 모두의 DNA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역시 탐욕과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과거의 인물들이 그랬듯이 국가와 사회, 개개인의 리스크에 영향을 받아,시기심에 휩싸이며 사소한 분쟁이 지역과 민족, 인종갈등으로 번져서 국가간의 무력 충돌이 빈번했다.
현 시대와 전혀 다른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었던 유럽 대륙에서 21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신 인류의 눈에 집단 소속감을 중시하는 20세기 사람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과 근시안적 태도 역시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수구 시설이나 공공 시설 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최하층민들도 탄압과 박해를 피해 살아 남기 위해 제국의 난민 생활을 했던 떠돌이 이민자들 모두 단 하나의 인생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희망을 품고 굶지 않고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이여서 불확실한 현실에서 내일을 위해 살아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세상을 둘러 보면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낯선 세상임에도,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 입에서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똑같네, 똑같아. 지금과 전혀 변한 게 없구나.”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독자들에게 던진 위의 질문은 유럽이 전쟁으로 어제의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이나 직후 그리고 21세기 현 시대까지 관통하는 세기의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 가려면 최소한 것들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이를 뒷받침 해줄 탄탄한 법과 사회 제도와 질서가 필요 하다. 하지만 살아 가는 동안 여전히 뜻하는데로 가질 수 없는데도 무리 할 정도로 소유 하고 더 소유 하기 위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굴레에 갇혀 버린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00년 심리학으로 20세기로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나서 세계 곳곳에서 한 목소리로 외친 것은 변화였다.
변화는 우리의 주의와 호기심을 끌어당긴다. 새롭고 놀랍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인민의 삶과 정신을 지배 하고자 했던 레닌과 그의 동지들인 트로이츠키, 스탈린 모두 세상을 전복 시켜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데 앞장 섰다.
레닌이 창당한 당에 가입하고 그가 인민을 향해 외친 선언문에 깊은 감동을 받아 기존의 사회 질서를 전복 시키는데 동조 하고 협력했던 세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불러 일으킬 파장이 전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접촉이나 별생각 없이 무심코 내린 결정 때문에 일어났다.
그 결정은 때로는 경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고, 끔직한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연재 하고 있는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역사적 배경은 60여 년 동안 제국의 황제로 군림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통치 하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 그리고 내가 창작한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있다.
공통의 언어나 종교, 역사가 없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 설치된 미니어쳐 같은 거대한 허상의 국가로 황제의 명을 받아 움직이며 똑같은 멜로디를 들려주는 오르골 같은 국가 였다.
19세기 말 부터 시작된 민족주의의 열풍이 20세기에 들어서서 계급의 차별과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제국의 제 1공무원 자리를 60여년의 세월이 넘도록 지키고 있던 황제 요제프 1세는 자신의 임무는 헌신적으로 지치지 않게 성실하게 수행 하는 것이라 믿었다.
반면에 제 2 공무원 자리에 있었던 제국의 후계자인 황태자 페르디난트는 낡고 오래된 제국의 관행과 관습을 전부 뜯어 고치고 싶었다.
이중 제국의 지위에 있었던 헝가리는 이 두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규율 준수자이자 강요자로 이루말 할 수 없이 멍청했다.'
몇 세기 동안 군림했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 할 때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어떤 통치력으로 국가를 이끌고 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다.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왔던 제국의 표층을 서서히 침식 시키고 파괴했다.
역사의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사건 때문에 발발 한 것이 아니라 앞서 발생했던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점과 점으로 이어져서 여기 저기 실타래처럼 엉켜진 것이 특정한 시기에 분출 되고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아름다운 시절을 회고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런 글을 남겼다.
1910년 부터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거의 똑같은 정도로 느낄 수 있었던 갑작스러운 융성이 시작 되었다. 도시는 해를 거듭할수록 한층 더 아름다워졌고 인구도 증가해 갔다. 1914년의 부다페스트는 1900년에 살고 있었던 그곳이 아니였다. 일국의 수도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에 부호들이 부다페스트로 몰려와 저마다 화려한 저택과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거리는 화려한 가게들로 즐비했고 웅장한 건물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이들이 드나들었고 매일 도서관, 극장, 박물관에서 지식을 쌓고 여가를 즐겼다. 이전에는 소수의 상류층만 누렸던 특권이 일반인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여행도 즐기며 한 채의 집과 그림,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부의 증대와 파급을 느꼈고 점점 더 새로움을 추구 하며 우리 앞에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확신했다. 젊은 세대, 늙은 세대들 모두 흔히 그랬던 것처럼 '옛날에는 참 좋았지.'라며 어제의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슈테판 츠바이크
1914년 세대는 지금의 세대보다 더 행복했을까?
평생 동안 진리를 추구 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진리의 한계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20세기 천재 중 한 명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00퍼센트 알콜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100퍼센트 진리도 없고 100퍼센트 행복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1차 대전의 화마가 발발하기 직전 1914년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지상의 새로움이 건설되고 창조 되었던 시대였다.
역사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20세기 최악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그 시절의 세상을 지난 2년 동안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100회에 걸쳐 펼쳐 보였다.
글을 쓸 때 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친다. 특히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나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라는 문장 만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 되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날에 다음날에 해야 할 목록의 우선 순위를 세워 놓을 때면 제 1순위에 <창작>을 적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창작> 안에는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내 스스로 무언가 만들고 창조 하는 작업을 의미 했다.
따라서 내 삶의 버킷 리스트의 1위 자리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창작>이다.
투비에 소설을 쓰고 연재 하는 동안 하루의 시간을 배분하며 일의 우선 순위에 맞춘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독서의 양과 범위를 이전 보다 더 폭 넓혀졌다.
창작 소설을 집필하기 이전과 이후로 독서의 양과 종류를 비교 해 보면 나의 독서량은 살아온 생애 주기 중에 현재 최정점을 찍고 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게 되자, 단순히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가 되었다.
러시아의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매번 새 작품의 원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겨 줄 때 마다 들었던 소리는 바로 '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원고 분량이 정해져 있다.'라는 말이였다.
특정 직업이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우리가 내뱉고 사용하는 언어의 양은 정해져 있다. 문자와 톡 메시지가 아닌 한 페이지 이상을 오로지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200여페이지의 단행본 분량을 채우는 글자 수는 대략 150,000자 정도로 이 숫자를 쌀로 환산 하면 27가마니 정도 분량이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나 불행하게도 그 원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윌리엄 서머싯 몸의 말처럼, 글쓰기는 운동과 악기를 배우고 일련의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과 달리 정해진 원칙도 기술을 갈고 닦을 교재도 없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00회 완결을 목표로 지난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한 회 씩 투비컨티뉴드에 올려서 2025년 12월 25일 마침내 100회 완결에 다다랐다.
지난 2년 동안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쓰기 위해 내 안의 지식과 창조적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읽은 책은 영하의 추위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책 탑을 쌓아 올릴 수 있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5년의 시간도 딱 5일 남겨 두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무언가 이룩하고 창조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은 가장 헛된 시간일지 모르고 삶에 그리 큰 교훈이나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 생을 단 한 단어로 줄이면 [이야기] 즉,서로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다.
살아 온 세월은 이야기의 연속이고 인생 자체가 이야기 보따리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동안 허구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두 번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2025년 한 해 동안 모두가 어렵고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견뎌 내고 12월 25일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오늘 무명의 작가가 2년 동안 써온 기나긴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이 오늘 마지막 100회가 시작된다.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 𝙼𝚎𝚛𝚛𝚢 𝚇𝚖𝚊𝚜 ·🌲
-굿바이, 부다페스트 100회.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완결)
https://tobe.aladin.co.kr/n/54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