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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여기, 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市)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나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패터슨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갖고 자신의 일터인 23번 버스에 올라 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에 그는 수첩을 꺼내 시를 끄적인다.


또 다른 하나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높이, 너비 그리고 깊이

마치 신발 상자처럼.

그러다 나중에 너는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

흠.

그러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차원...

나는 일을 해치우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내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는 버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거나 푸념할 때도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해진 정거장을 따라 운행 시간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 온 패터슨을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마빈을 쓰다듬고는 아내의 하루를 묻는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 놓던 아내는 매일 수첩에 시를 끄적이는 남편에게 시를 출판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려 듣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산책 중에 그는 잠시 들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그 다음날도 패터슨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 오늘의 날씨와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가 운전 하는 23번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만 바뀔 뿐이다.

패터슨은 매일 운행되는 버스 노선 시간표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마치 찰나의 순간에 수면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을 포착 하듯 버스 시동을 켜기 전 시를 쓰고 있다.


꽃잎 가장자리에서 하나의 선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가늘고 하염없이

단단한 그 강철의 존재가

은하수를

뚫고 들어간다

접촉도 없이—거기에서

올라간다—매달리지도 않고

밀지도 않고—

멍 들지 않은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그 장미」,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버스 기사 패터슨은 대단한 기대나 거대한 야망을 품고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패터슨은 한번 쯤은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버스가 고장 나 일정이 변경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무미 건조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반복 속의 적지 않은 충돌과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무수히 내뱉는 말은 매일 바뀌는 날씨처럼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상흔을 남겨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는 감정들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연을 이루는 행과도 같아 일주일의 삶은 7연으로 쓰인 시(詩)일 것이다.


시를 쓰며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도,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를 치는 그의 아내 로라도, 패터슨의 단골 바에서 매일 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주인장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일상을 시어로 빚어내는 예술가들이다.
일상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빚어내며 2024년 2월 1일부터 100회 완결을 기획하고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년의 시간을 지나 2025년 8월 21일 82회를 발행했다.
-굿바이부다페스트https://tobe.aladin.co.kr/s/9373

긴 시간 동안 100회 완결을 향해 고군 분투 하면 쓴 무명 작가가 쓴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을 읽어주고 응원 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제 82회 덫에 걸리다.
https://tobe.aladin.co.kr/n/48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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