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은 매일 무언가 쥐고, 만지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을까?

특정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당신은 거기 서서
엄청나게 커다란 양배추
혹은 바이올린
혹은 밝은 색 풍선을
들고 있다.
그건 그 자체로 일이다.
한 가지만 하는 단순한 행위
- 마이라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에서
짙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빨간 풍선 다발을 들고 분홍 빛 벛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곳을 지나간다.
그림 속 여자는 풍선만 들고 있는 것일까?
사는 동안 무언가 들고, 지고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c)maira kalman
'거대한 바위를 안고 아몬드 꽃 사이를 걷는 내 꿈속의 여자(Women in my dream walking through almond blossoms holding a giant boulder)'라는 제목의 이 그림 속의 여인은 자신의 몸 보다 몇 배나 커다란 바위를 양 손에 힘겹게 들고 있다.
저 바위는 그녀에게 무엇일까?
온갖 근심과 걱정 덩어리들, 슬픔과 회환,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들이 저 바위 크기 만큼 온 몸을 짓누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로 삶을 짓누르며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다.

(c)maira kalman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덩어리들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양배추 크기였다면 매일 몇 장씩 잎을 떼어내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 해서 전부 씹어 삼켜 버릴 수 있다.
양배추를 가지고 있었을 때와 양배추 한 덩어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났을 때의 마음 상태가 다르듯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금전이나 물건도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행복을 어떻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c)maira kalman
태어나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흐를 수록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정작 삶의 소중한 시간은 허비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놓치는 동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도 하며, 어깨 위에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의 무게를 벗어던지기 위해 인생을 행운의 날벼락 같은 숫자에 맡길 때도 있다.

산책 하듯 강변 길을 걸어 가면 꿈의 숫자,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쏟아내는 행운의 명당 판매점이 있다.
경제가 나쁠 수록 불티나게 팔리는 건 저가형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그리고 로또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일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로또를 살 때 마다 '혹시 모르지, 당첨될 지도 '라는 꿈에 잔뜩 부풀러 오른다.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꽤 만족스러울 때면 내 몸 하나 온전히 버텨 내는 것 만큼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 같다.
취업난, 월급난, 물가난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 속에 커피 한 잔 값으로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며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어떤 것을 가졌다가 낙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성해나의 <혼모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