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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able feast
  •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 고레에다 히로카즈
  • 17,550원 (10%970)
  • 2025-05-15
  • : 2,870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는 다양하면서 잡다한  영상들이 올라 오는데 조회수가 높은 순위에 꼽히는 영상들은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영상들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우들은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 속의 모습이 아닌  냉장고 안에서 음식을 꺼내 직접 요리해 먹거나 지인들을 초대해서 수다를 떠는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모습이나 작품에서 미처 보여 주지 못했던 개인적인 취미나 재주를 보여 주기도 한다.

유튜브 플랫폼이 존재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배우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각 방송사에서 특별 제작 하지 않은 이상 대중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배우들, 화려한 조명 아래 멋지게 차려 입은 그 배우들이 한 시절의 인기가 저물고 나서는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 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10대 때 부터 영화에 출연 해서 19살에 출연했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단숨에 월드 스타가 되었다.

 데뷔 이후 부터 배역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그녀는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배우로 엄마로 살았던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대 배우의  인생 이야기는  책도 유튜브도  아닌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손에서 영화로 탄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래전에 깊은 감동을 받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고 조금씩 구상을 하다 2003년 인생의 말년을 맞이 한 어느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의 시나리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라는 제목으로 준비해 두었다.

애초에 이 시나리오는  연극 상영이 시작 되던 날 분장 실에서 여배우가 소원해진 자식과 우정을 나눌 동료 배우조차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는 내용이였다.

감독이 미리 점찍어 두었던 여주인공은 1950년대부터 60년대 까지 일본을 대표 했던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와 감독의 페로소나 같은 배우 기키 기린을  염두 해 두고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다른 작품 촬영에 밀리고 밀려서  시나리오 작업이 부진해 졌고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2018년 영화 제작을 시작할 무렵에 기키 기린 배우가 암 투병 끝에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시나리오는 서랍 속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바닷 마을 다이어리> 상영 때 직접 관람했던 카트린 드뇌브와 인연이 닿았던 감독은 우연곡절 끝에 <어느 가족> 촬영을 마치고 나서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영화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이름은 파비안느, 직업은 배우로 실제 카트린 드뇌브의 삶과 매우 흡사하게 설정 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 성공을 거두었던 배우 파비안느는 한때 프랑스를 대표했던 대 배우였지만 이젠 작품 섭외조차 들어 오지 않는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배우였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자서전을 준비하는 동안  발간 하기에 앞서 좀처럼 왕래 하지 않았던 딸 부부를 초대 한다.

파비안느의 딸 뤼미르는 엄마의 자서전을 읽다가 단 한 줄도 진실이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항상 영화 출연 중이여서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둘도 없는 모녀 사이를 넘어 단짝 친구처럼 묘사 되어 있었다. 

엄마와의 추억이 전혀 없었던 딸 뤼미르가 이 자서전은 허구라고 따지자 파비안느는 무심한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진실은 재미없지 않겠어?"

배우가 되지 못해 시나리오 작가가 된 딸 뤼미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가식과 허영 덩어리로 대중들에게 조차 엄마의 모습을 연기 하고 있을 뿐이다.

파비안느 삶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갖지 않는 진실 된 사람이 존재 한다.

손녀 샤를로트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이지만 배우인 할머니의 성격을 쏙  빼닮아서 개성 있고 매력적인 성격의 아이다.

영화는 배우 파비안느가 그동안 살아 오면서 실제 인생과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인물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사랑과 위트가 넘치는  가족 품에서 다정한 엄마로 살고 있는 딸과 달리  엄마 파비안느는 어린 시절 부터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생을 연기 하다가 실제의  삶과  가상의 인물의 삶이  혼재 되어 어느 새 모든 순간이 가식적인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감독은 파비안느가 연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에서 흘리는 눈물과 딸과 사위 앞에서 흘리는 눈물의 모습을 뒤섞어 놓고 관객들에게  영화와 현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기하는 인물과 실제의 삶이 다르지만 일반 대중들은 작품 속 배역에 완전하게 몰입한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같이 눈물을 흘릴 때가 있듯이 연기하는 배역이 그 배우의 실제 모습과 가깝다고  착각 할 때가 있다.

감독이 실제로 만났던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 속 인물처럼 살지 않고 연기와 자신의 인생을 구분해서 살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 사회>로  전 세계인들에게 이름을 알리면서 10대 시절 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 이선 호크는 카메라 밖에서는 수다쟁이에 딸의 치아 교정을 언제 해줄 지 고민하는 딸 바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줄리엣 비노쉬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출연 섭외를 받자   감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직접 식사 대접을 했다.

줄리엣 비노쉬는 대 배우와 기싸움을 벌이거나 작품에서 자신의 배역 비중을  놓고 감독에게 압력 행사를 하지 않고  다른 국적의 감독들이랑 영화 촬영 당시에 얽혔던 에피소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며 영화 출연에 있어서 감독의 국적이나 언어 장벽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9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영화로 개봉한 이 작품의 원 제목은 <진실>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003년 부터 지지부진하게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캐스팅을 염두 해 두었던 배우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영화 배경을 일본이 아닌 프랑스로 옮겨서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와 딸의 갈등과 화해에 촛점을 맞추었다.

프랑스 현지 촬영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감독은 통역사를 통해 촬영과 연기 지시를 했고 편집하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서 격리 기간 동안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촬영했던 것을  일지처럼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멋지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직접 하이쿠 시와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남긴 감독은  촬영하는 동안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연기 배테랑들의 배려와  촬영팀의 협력으로 두 달 만에 완성했다.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 <브로커>촬영과 동시에 프랑스에서 영화 촬영과 편집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영화 일지 마지막에 한국 영화 제작 촬영 팀과 일했던 소감을 적어 놓았다.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자주  방문 했던 감독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 촬영 중에 막말을 쏟아내는 촬영팀의 우두머리와 콧대 높은 배우들의  모습이 초대형 히트작 <오징어 게임>과 흡사 하다고  일지에 남겼다.

감독은 1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 했을 때에 비하면 그나마 한국 영화계는 수평적이게 되었다고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영화  현장에서 60대 부터 70대까지 꾸준하게 활동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나이와 출신 세대 별로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서 기싸움을 벌이다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은 팬들과 소통을 위해 작품 홍보를 위해 배역을 맡지 못하는 동안 연기 공백기를 이유로 상당수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며 연예인 프레미엄으로 붙는 PPL까지 챙기고 있다.

전국민 80퍼센트 이상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고 누구나 개인 콘텐츠를 제작해서 영상을 촬영하고 올릴 수 있는 시대에 일반인들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까지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영화 속 세상이 진실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보여지는 것들을 진실로 받아 들일 때가 있다.

실시간 영상 시대에 진실처럼 보여지는 가상의 세상을 보며 울고 웃는  우리는 진실이 덮어진 무시 무시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영화 <공기인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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