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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Kim's World
  • 폭력의 유산
  • 캐럴라인 엘킨스
  • 39,600원 (10%2,200)
  • 2025-08-13
  • : 6,240

1890년대 프랑스에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유료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30년대에 영화는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시각적인 미디어였다. 종이 신문 구독자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소리로 정보를 접하는 라디오 역시 소중한 미디어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미디어를 접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았고, 주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선거 등 정치 현안도 '수다'를 떨었던 주제의 하나였다. 전쟁이 한창일 때, 정치 권력가들은 위의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하여 정권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명한 집단지성은 권력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대체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과 독일의 히틀러도 전쟁 중에는 인기를 얻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 새로운 미디어의 영향력에 의해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했던 영국의 수상이자 시온이즘(Zionism*)을 옹호했던 '윈스턴 처칠(1874년-1965년, 90세)'은 전쟁 후에 선거에서 참패하며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영국인들은 종전 이전에는 전쟁에 휘말린 영국을 처칠만큼 잘 이끌 사람이 없다고 믿었지만, 전쟁 후 폐허가 된 국가(사회)의 재건과 민생 회복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인식했다.


대중의 지지를 얻은 노동당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총선 역사상 가장 큰 격차인 12퍼센트 차이로 처칠이 수장이었던 보수당을 따돌리며, 146석의 의석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다.


문화 민주화가 노동당 지지율 중가와 함께 영국의 일상생활 거의 모든 부분을 파고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광고, 영화, 라디오, 인쇄 매체의 혁명 덕에 영국인은 아주 빠르게 다양한 견해와 이미지를 소비했다.

1939년에는 5000만 영국인 중 거의 절반이 매주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고, 70퍼센트 이상이 라디오를 소유했다. 라디오 소유주가 겨우 1퍼센트 정도였던 1922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었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 일일 판매 부수는 1922년부터 두 배 이상 늘어나 약 1100만 부에 달했다. 영국 정보성은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해 제국 (홍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 지은이 '캐럴라인 엘킨스 Caroline Elkins', 옮긴이 '김현정', <폭력의 유산 Legacy of Violence>, 상상스퀘어(2025), Page 518


노동당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다. 한층 발전한 특정 정당의 정책이 향상된 대중 매체를 타고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대중의 포용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영국의 노동당은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의회를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하다가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역대 최다 의석수인 418석을 차지하며 약 13년간(2010년까지) 집권하였다. 2010년 이후 14년 동안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던 노동당은 가장 최근에 치른 총선이었던 2024년에 413석을 차지하며 또다시 압승을 거두었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정권을 유지한 영국의 보수당은 캐머런 총리가 약속했던, 유럽 연합(EU, European Union) 탈퇴 찬반을 결정지었던 2016년 6월에 열린 영국 국민투표 개표 결과 72.2%의 투표율과 51.9%의 찬성으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확정 지었고, 2020년 1월 31일 유럽 연합에서 정식으로 탈퇴하였다.


위의 영국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미디어 영향력과 집단지성의 현명함은 권력자 한 두 명이 영원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까지 어느 정도 민감한 정치적 여론 통제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언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1890년대부터 발달한 대중매체는 '스마트 폰(iPhone 아이폰)'이라는 '손 안의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2007년 1월 직전까지 약 110년 동안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마음껏 행사했다.


유튜브(*哔哩哔哩 삐리-삐리 Bilibili), 페이스북 & 트위터(*新浪微博 신랑-웨이보 Xīnlàng Wēibó), 인스타그램(*小红书 시아오-홍-수 Xiǎohóngshū,  넷플릭스(*优酷 요우-쿠 Yōukù)등 사람과 집단이 만들어 내는 셀 수 없는 정보가 상호 연결되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영향력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다. (*괄호 안은 거의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이다. 사용자는 기본 3억 명에서 최대 10억 명 이상이다)


최근 세계 각 국에서 일부의 극우 세력이 정권을 획득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사례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개인적으로 예상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호주의(무역과 경제 부문)나 극우 보수세력 혹은 독재자는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반대되는 시스템이기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형성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헌법 제19조부터 22조까지 사상의 자유(양심의 자유, 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표현의 자유(언론·출판, 집회·결사, 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를 보장하고 있다. 이 중의 어느 하나라도 억누르려는 행위는 국가발전을 저해한다.


위의 조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어야 사회 전반에 혁신이 이루어지고, 창의적인 경제가 발전하며, 문화가 융성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정치권력을 사전에(혹은 사후에라도) 차단할 수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오늘 현재(2025년 하반기)까지, 한국인이라면 이론으로만 알았던 위의 표현들을 현실에서 실감 나게 체험하고 있다.


어쩌면... 세상(지구촌) 사람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비폭력과 상호 연대하는 방식으로 슬기롭게 행동했던 한국인들의 진면목을 알려는 노력을 시간이 갈수록 좀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말) 유럽 연합 탈퇴전까지 무난한 성장을 계속했던 영국은 지난 2016년 보수당에 의한 유럽 연합 탈퇴로 제조업의 쇠태와 성장률 하락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국의 자리를 대체한 국가는 독일이다.


지난 2005년~2021년까지 독일을 유럽 연합 내에서 최강국으로서의 성장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은 독일 최초, 최연소 여성 총리이자, 최장 기간(16년) 집권한 총리로 기록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이다.


그녀는 보수당인 '기독민주당'에서 정치인의 길을 시작했지만, 보수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진보에 가까운  연합행보를 보였다. 독일인들은 메리켈을 '엄마'라는 의미를 가진 '무띠(Mutti)'라고 불렀다.


그만큼 포용력 있는 독일의 총리로서 영국의 마가렛 대처의 11년 총리 장수 기록을 최초로 넘어섰다. 앞으로도 이 기록은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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