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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온다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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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9
- : 1,480,325
“비가 올 것 같아” 소설은 이렇게 중학교 3학년 소년의 생각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반 사람들은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준비한다. 당연히 비를 맞지 않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출근하기 위해 깨끗하게 다린 셔츠가 비에 젖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얼굴에 바른 화장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옷 맵시와 정성스럽게 손질한 머리 모양이 비에 젖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왜 이토록 비를 맞지 않기를 원할까? 그냥 맞아도 되는데 말이다. 모두 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라 여긴다.
아울러, 비에 젖은 옷에서 나는 비린내를 상대에게 품기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는 우산을 준비한다.
작가는 소년이 걱정하는 비가 단순한 가랑비가 아니라 생각했다. 무려 80만 발의 쇠로 만든 총알을 준비했던 ‘국가의 특정 집단’이 소년을 비롯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비’로 바라본 듯 하다.
너무 많은 비를 맞은 것이 아니라, 단 한 방의 ‘총알’ 비를 맞은 소년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어린 새처럼 어린 청년의 영혼은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은 영혼은 차마 자유롭게 날아오르지 못하였다.
소년은 왜 자기가 죽었는지, 누가 총을 쏘아 죽이라 명령 했는지, 누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는 지 알고 싶었다.
군인도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어찌 그리도 잔인하게 사람 몸을 훼손했을 수 있었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특정 순간에 발휘된 것인가? 모를 일이다.
확실한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은 ‘군대’라는 ‘군중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또 다른)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95)
인간의 근본적인 야만성 반대편에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에 서 있던 소년이 있었다.
그걸 알고 싶었던 그의 혼은 ‘검은 숲’에서 썩어가며 악취가 나는 스스로의 몸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을 달래기라도 한 듯, 영문을 모른 채 죽은 또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몸들이 십자 형태로 포개진 채 함께 있었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인 것이 국가 권력임을 알면서 죽기 전에 애국가를 부르고, 시신이 담긴 관을 태극기로 감싸던 사람들의 행동을, 그렇게 행동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평범한 얼굴, 보통 사람의 손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손이 따귀로 연거푸 날아와 목이 휠 정도로, 안면 피부 안쪽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소년의 영혼은 지켜보았다.
총과 대검으로 무장한 압도적인 힘의 폭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익히 잘 아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어두운 밤을 지새고, 동이 터 오면 죽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보통의 사람들은 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을까?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그 어떤 무자비한 힘의 폭력이라 할 지라도 결코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소년이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것, ‘순전하고 숭고한 양심’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맥박의 힘을 느끼게 하는 두 글자 때문에 옆구리에 총탄이 날아들어와 내장이 흘러내리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대검이 목과 얼굴을 긋고, 총에서 가장 무거운 개머리 판이 인간 생명의 출발 지점을 무참히 짓이기는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숭고한 집단이 되어버린 양심과 하나가 되었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16
총을 가지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항은 했으나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양심‘ 때문에 쏘지도 못할 총을 소지했던 시민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집단’에 의해 스러져 간 꽃들이 되었다.
숭고한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어미새가 되기도 전에 영혼 만이 남은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 소년을 생각하며 작가는 말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Page 100
살아남은 것에 아파하는 것도 모자라, 치욕을 간직하며 남겨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숭고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무섭고, 어둡고, 그늘진 곳에 있었다‘고…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은 그늘진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밝은데 꽃이 핀 곳으로 가라고…‘
작가는 작품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커다란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그) 무엇이지 않기 위해,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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