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의 이 거지 같은 소심함 때문에 놓치고 산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중략) 나는 도무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인용)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의 저자 ‘이지현’ 님은 그 동안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주저함, 소극적인 태도, 전전긍긍, 소심함 등 그녀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막고 있던 장애물들을 이 책을 써 나가는 동안 상당히 많이 거두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제야 비로소 정신적 혹은 심리적으로도 ‘자유롭게 할 말은 하면서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공동체 (가족을 시작으로 학교, 첫 직장, 직업 공동체, 취미 단체 등)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 자존감의 상실에 이어 소극적이거나 침묵하는 삶, 심할 경우에는 극도의 우울함을 지나 분노의 삶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Reading 독서> (Image from Unsplash (CC)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의 준수, 가족이 우선시 하는 가치와 형제자매 상호 간의 질서 및 태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자신의 방어 본능과 공격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안되요! 혹은 노 No!‘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예상되는 보복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무엇이 정의롭고 정당한 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안된다고 말했을 경우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노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감으로 알고는 있으나 그 감각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로 인해 ‘아니오!’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공동체에서 혼자가 되거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가치관 혹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타인의 눈에 띄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미리 짐작하거나 가상하여 판단하는 경우에도 타인을 향해 선뜻 ‘아니요 혹은 안되요!’라는 발언을 하지 못합니다.
위의 모든 상황들은 사람의 타고난 개성과 진실성,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진정한 필요와 욕구, 기쁨과 두려움, 열정과 신념…등 타인과 구별되는 진정한 자아 또는 온전한 정신적 충만감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 강력한 방해물이 됩니다.
상황에 맞추어서 적절하게 "아니요"라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번영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Nope' (Source: Photo by Daniel Herron on Unsplash (CC))
저자는 사람을 사귀는데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마음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사람을 찾고 있음을 글 전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지…그 방법을 몰라서 마음 속에 내재된 두려움이 행동 혹은 말하기를 주저하는 상태로 나타났을 뿐 입니다.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동생이랑 유럽 갔다 와!“라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감히 거절도 못하고 숙제 하듯 떠난 한 달 간의 여행이 어쩌면 이 책을 쓸 수 있기까지 삶의 변화를 초래한 '전환점(Turning Point)'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가족 어른의 말에 거절 못하고 도착한 생애 첫 해외 여행지에서 저자는 횡단보도에서 무조건 정지해 주는 런던의 차들을 보면서 배려심이 넘치는 공동체가 존재함을 몸소 경험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런던에서는 서로 서로 배려하는 일상의 문화가 전달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체득했을 것 입니다.
속도의 한계 없이 달려도 되는 독일의 아우토반 (Autobahn)과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보면서, 저자는 강요된 통제 없이도 사람은 얼마든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공동체와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은 저자 스스로 ‘가장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고 말하듯이 파리의 한 공원에서 보았던 자유롭고, 여유로운 -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 혹은 존중할 줄 아는 - 관용이 있는 사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원하는 미래의 자신은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줄 아는 '파리지엔(Parisienne, '파리에 사는 여자'라는 뜻)'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는 '똘레랑스(Tolérence)'가 실제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치 안 보고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라는 표현 속에서 저자가 살고 싶은 세상과 마음 편하게 표현하고 행동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잠시 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가까운 미래에 우아함과 고상함, 똘레랑스을 갖춘 품격이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은 솔직하게 나서서 ”제 꿈은 작가이고요, 어리둥절 초대박 나서 떼돈 벌고 싶어요“ 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줄 아는 약간의 '건강한 뻔뻔함'도 이제는 생겼습니다. 보기가 참 좋습니다.
비록, 아직도 피아노 연주회에 나가면 어쩔 수 없는 긴장감 때문에 엉망진창이지만 처음 피아노를 마주했을 때의 악보를 다시금 보면서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뿌듯할 줄 아는 내면의 건강함까지도 갖추었습니다.
‘거절을 못했던 오늘’과 달리, 내일부터는 남의 삶에 들러리 서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해야 할 말은 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고 싶은 작가의 확 달라진 삶의 자세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자료출처>
이지현 지음,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Book Around 출판 (2023-09-15)Mark Gorkin, "Why Is It Hard to "Just Say ‘No’"?: Ten Barriers to Asserting Your Individuality, Intentionality and Integrity ("그냥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당신의 개성, 의도 그리고 강한 도덕성에 기인하는 정직함을 주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10가지" - 제목 번역: 운영자), LCSW ("The Stress Doc") on MentalHelp.net, Feb 6, 2013 (최종 방문: 2023-11-22)
최연구 프레시안 기획위원, '똘레랑스를 생각한다', 프레시안, 2004-06-21
눈치 안 보고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 P14
이제는 ‘욕 저장장치 대신, ‘좋은 말 저장장치‘로 칩을 갈아끼웠다. - P34
기억 속에 저장된 그 때의 여유 넘치는 장면은 간간이 내 인생에 끼어들어 삶의 자세를 고치게끔 해 주었다. - P39
내 곁에 남길 좋은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P51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갑자기 혼란스럽다. 행복해지려면 나 자신을 잘 아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60
재능이 없다면 그 재능 없음으로라도 먹고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 P99
불행의 시작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데 있다. 사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에 만족한다는 측면에서는 누구보다도 특출난 사람이었다- P117
달리 방도가 없다. 많이 가진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껏 부러워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지니고 싶다- P132
나는 어느 순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인생 날로 먹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들을 좋아하게 됐다. (중략) 얌체 같은 발언임에도 당당한 게 좋아서다- P149
밝혀낼 수 없는 병의 근원은 늘 스트레스로 귀결되듯이 오랜 시간 배에 돌덩이를 키워오던 시절은 스트레스가 유독 심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P173
요즘은 "느낌표!"를 쓰며 살고 있다. 내 기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무엇보다 내가 좋으면 묻지 않고 그냥 한다. (중략) 타인의 선택은 결코 내 마음을 들여다봐 주지 않는다-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