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번역가인 이재황 님의 ‘옮긴이의 말’을 제외해도, 총 963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세계사 입니다.
1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객관적 사실 혹은 다양한 참고문헌에 기반한 저자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법과 세계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넘나드는 수 많은 지식의 향연 덕분에 지루함은 느끼지 못하는 책 입니다.
‘먼 옛날부터 아시아의 중앙부에는 여러 제국이 들어섰다’로 시작되는 이 책의 첫 문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오래 전부터 세계사의 주인공은 ‘아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한 국가들이었다는 점을 저자는 역점을 두면서 서술합니다. 실제로 방대한 분량의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고 나니 저 스스로도 세상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21세기 현대 국가의 주인공은 유럽과 미국, 중국 등 거대 국가들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사의 중심은 여전히 이들 아시아 국가들이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는 철저하게 유럽이나 미국 등 패권 국가의 관점에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서술의 관점을 ‘아시아’로 전환할 경우에는 그 동안 배웠던 역사적 사실과 의미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보이는 지를 저자는 수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총 25장으로 구성되는 각 장의 타이틀은 첫 장인 ’실크로드의 탄생‘ 만을 제외하고 모두 ‘OO길’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피의 길, 은의 길, 석유의 길, 냉전의 길 등의 형태로 전개됩니다.
저자에게는 어쩌면 인류가 2천 년 이상을 지속되어온 세계의 역사가 ‘길과 길을 연결’하여 뭔가를 교류(무역)하거나 그 ‘길목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 다툼 혹은 정치 역학으로 보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아시아 국가들과 구성원들 인생의 희노애락도 지배자들 못지 않게 파란만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류 역사와 문화 콘텐츠‘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소설처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전체적인 세계가 어떻게 발달을 해 왔는 지에 대한 ’일종의 통찰 혹은 윤곽‘이 머리 속에 들어오는 책 입니다.
실제로 소설과 비슷하게 쓰여졌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주인공이 ’개인‘이 아니라 ’특정 국가‘ 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이라면 그 동안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고, 누군가 설명을 해 주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중동 국가들의 현실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는 점입니다. 현재도 무지 복잡하게 돌아가는 ’중동 지역‘과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300년 대에 지중해에 위치한 국가인 ‘그리스’는 동쪽에 위치한 페르시아 제국(지금의 이라크, 이집트, 아프카니스탄,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 중동 지역)를 점령하여 광활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원전 100년대에는 세력을 확장한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다시 통제하게 됩니다.
그 보다 100년 앞선 기원전 200년 대의 중국(한나라, 무제)은 지금의 신장 지구를 시작으로 900km에 달하는 ‘하서주랑’을 활용하여 ‘둔항’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텐산 산맥, 힌두쿠시 산맥의 연결점인 ‘카슈가르’까지 연결합니다. 중국의 국경 확장으로 아시아는 당시에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중국과 국경 너머의 세계(그리스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확장해 놓은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교역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중국의 세력 확장과 유럽의 세력 확장이 만나는 시기였던 기원전 100년 대를 지배한 로마 제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 교역 물품이자 당시의 최대 사치품이 바로, 중국 현지 가격보다 100배 비싸게 거래된 ‘비단 (SILK)’이었습니다.
기원전(B.C) 1세기와 기원 후(A.D) 1세기를 지나는 시기에 서방 국가(로마 제국)는 동방에 위치한 국가(이전의 페르시아 제국과 중국)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동방 국가들 역시 서방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광활한 땅 덩어리와 해양 항로를 보유한 인도(India) 대륙은 경유지로써 페르시아만과 홍해를 연결하는 교통량이 늘면서 초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를 거친 이후에 식민지 제국을 확장하면서 성장하는 영국, 스페인 유럽 국가들이 위치한 서쪽과 중국으로 상징되는 아시아 국가들이 만나는 길이 ‘실크로드’였고, 그 교차점에 위치한 지역이 오늘날의 중동 국가들 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동안 주목을 받았던 ‘실크로드 종점’에 해당하는 ‘중동 지역 국가’들이 보유한 영토에서 1950년대 이후 땅 속에서 발견된 ‘20세기 비단인 석유’는 세계사의 흐름을 새롭게 바꿔 놓게 됩니다.
1900년대까지는 실크로드의 종점 지역에 놓였던 국가들이 1950년 대 이후에는 20세기 실크로드(석유 수출길에 놓인 국가)의 출발점이 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자원 수탈로 상징되는 ‘식민지 제국’ 시대가 펼쳐지는 동안 잠시 잊혀진 세계사의 흐름에서 이번에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20세기 ‘석유 로드’와 이 경로에 있는 중동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에 거머쥔 막대한 부로 세력을 키운 영국 등 유럽 국가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의 주도권을 갖고 싶어하는 미국과 소련의 패권 싸움에서 ‘석유’로 인해 돈은 좀 벌었습니다.
그러나, 패권 싸움에서 이리저리 이용을 당하면서 결국에는 얻은 것이 거의 없는 ‘분쟁 지역에 위치한 국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해당 지역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원 전에는 엄청난 번영을 누렸던 페르시아 제국이 실크로드로 이어진 핵심 교역국가였지만,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한 이들 국가가 바로 오늘날의 분쟁지역인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터키,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돌고 도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는 ’중동지역 국가‘와 관련한 뉴스를 보면, 왜 그러는 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20세기(1900년대)에 세계의 강자로 탄생하여, 민주주의 체재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미국‘이란 나라의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그들의 숨겨진 뒷모습’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단’을 매개체로 연결된 ‘첫 번째 실크로드’에 이어서 ‘석유의 길’로 이어진 ‘두 번째 실크로드’를 인류는 지나왔습니다.
이제는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있고, 그 자리를 재생에너지로 대변되는 태양광과 풍력 등 무공해 에너지원으로 대체되는 '거대한 변화 시대'에 살고 있는 2023년 현재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세 번째 실크로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반도체 실크로드’에서 1,000년 전에 제 1세대 실크로드의 주역으로서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는 중국을 시작으로 제 3의 실크로드 건설에 필수적인 리튬 등 ‘희귀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한 패권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대한 문명의 흐름 속에서 비단, 석탄, 석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한국은 눈 앞에 닥친 제 3의 실크로드 형성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누구와 그 길을 같이 가야 할 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