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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書閣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14층의 작은 여자아이는 맵시 있는 연보라 트렌치코트에 코가 둥근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다. 아이는 살며시 쪼그려 앉더니 아줌마 구두 이쁘다,고 제 어미에게 속삭인다. 둥근 코가 반짝이는 내 검정 구두는 작은 리본장식까지 있어서 어쩐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듯 부끄러워 바지에 숨겨 신다가 모처럼 산뜻한 날씨에 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는 길 아이의 눈에 발각 된 것이다. 아, 이런. 도망치듯 서두르며 걷는 내 발걸음이 우습다. 칭찬은 누구의 것이든 즐거운데 네 구두도 예쁘다고 마음으로만 말한 게 못내 아쉽다. 웃어 주었으니 되었을까.  

 

맑고 찬 공기다. 이런 날은 오만 번도 더 재채기를 하고 녹초가 되어 출근을 하는데 오늘은 그 사이 적응이 된 듯 편하다. 큰 몸을 가리기위해 감색 코트에 감색 스커트 감색 스타킹에 반짝이는 검정 구두와 그럴듯한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 사람처럼 튼튼하고 실용적인 각이진 검정 가방과 가죽장정의 다이어리에 은색 펜을 꽂고 허릴 꼿꼿하게 펴고 출근을 하지만 정작 사무실은 나 혼자 뿐이고 어느 날은 전화한번 울리지 않는다. 우선 평평한 발에 살짝 불편한 구두를 벗어두고 삼선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이쁜 아줌마 구두가 참 별 볼 일 없다. 당찬 이의 발이 주인이 아니어서 무안하다. 그러니 나는 책을 한줄 더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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