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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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헌책방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최승자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려져 잠들리라,/ 쥐도새도모르게 잠들어버리리가./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 계신가,/ 정처없이 살아 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뜽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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