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코로나19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맞이해 시간이 생겨버린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 방학을 맞이해버렸다. 게다가 작가와는 다르게 좁은 공간에 갇혀버린 상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미난 일 중 하나가 아마도 책 읽기. 그렇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을 지금 현재 작가의 삶에 끌고 와서 삶을 반추하고 의미를 되짚어본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대한 선이해가 있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지만, 설사 도스토옙스키를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인용이 잘 되어 있고, 쉽게 안내하고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하나라도 먼저 읽고 이 책을 보려 한다면, 아마도 읽어야 할 것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다. 이 책 초반에 인용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이 책의 시발점이 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말한 대로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 고전소설이라면 그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 삶에 많이 빗댄다. 드라마 속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는 모습을 보며 내 시어머니, 내 며느리,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나를 떠올리 듯, 이 책의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탐독하며 내 삶의 특정 부분과 그에 대항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과거 또는 현재의 작가의 모습에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유지하고 싶은 거리를 침해하는 가족에 대한 부담스러움, 직장에서의 부당함을 못 견디겠는 마음과 생계 수단을 지켜야 하는 마음의 고군분투, 침묵과 뒷담화 사이의 고뇌, 꼰대가 아니고 싶음 마음과 현실의 간극,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멋있게 나이 들까에 대한 고민. 우리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고 이 책의 도 작가도, 그리고 그 옛날의 도 작가도 생각했던 것들이다. 이것이 고전소설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라고 이 책의 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적이고, 품위가 있으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실언하지 않으며, 재능과 집중력을 겸비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대인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 여정에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들고 어디쯤 걷고 있는 작가를 따라가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난데없이 맞이한 코로나 칩거를 고전 읽기로 채워갈 수 있을지...
나는 지적이고 싶고,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품위가 묻어나는 사람이고 싶고,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가 하면 많은 말로 실언하지 않고 싶고, 타고난 재능에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대인관계를 맺는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 -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