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 몰리네르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플랫폼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펜으로 글을 쓰는 몸짓을 보냈다.
"알았어. 도착하자마자 편지 쓸께." 훌리안이 대답했다.
"아니. 책을 쓰라고. 편지 말구. 나를 위해 소설을 써. 페넬로페를 위해서도."-70쪽
"모자라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겁쟁이들은 침묵하며, 현명한 이들은 이야기를 듣지."-92쪽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괴물로 묘사하려고 작심을 했을 땐 둘 중 하나란다. 즉 그가 성자(聖者)이거나,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건의 전모를 다 알지 못하든가 말이다."-97쪽
나는 아버지를 말 없이 지켜보았다. 숱이 없는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있었고 얼굴 피부는 이미 광대뼈 주위의 단단함을 잃기 시작했다. 예전엔 강하다고, 거의 무적(無敵)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연약함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꺾여버린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 둘 다 꺾였으리라. 나는 몸을 기울여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해온 그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와 그 좁은 집, 그리고 내 추억으로부터 아버지를 떨어뜨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로부터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듯이 그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마치 그 입맞춤으로 시간을 속일 수 있고, 그 시간으로 하여금 우리를 그냥 지나치고 지난날과 지난 삶을 되돌리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100-101쪽
"어떻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지,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거나 그들을 빼앗길 때까지 우리가 행하는 경멸의 비열함을 깨닫지 못하는지 참 희한해. 우린 그들을 빼앗기지. 왜냐하면 한번도 우리의 소유였던 적이 없었으니까......"-188-189쪽
"때때로 우린 사람들이 복권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우리의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뤄주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으로 말야."-190쪽
"일하는 동안에는 인생을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201쪽
그 낯선 남자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훌리안 카락스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소를 갖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지.-203쪽
"돈을 벌기만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냐." 그는 이렇게 한탄했지.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어려운 거지."
(그러게...)-215쪽
"이제 그것이 우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됐어요. 알죠? 추억 말예요. 사람은 살면서 많은 실수를 하지요. 그런데 아가씨, 그걸 늙어서야 깨닫게 된단 말이오."-300쪽
"무슨 병인데요?"
"심장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를 죽게 하는 건 고독이에요. 추억은 총탄보다도 나쁘지요."-303쪽
몇 년이 평화롭게 흘러갔어. 세월은 공허할수록 더 빨리 지나가지. 의미 없는 삶들은 너의 역에 서지 않는 기차들처럼 너를 스치고 지나가는 법이거든. -308쪽
푸메로 같은 인간은 결코 증오하는 걸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의 증오에는 의미도 이성도 없지. 그저 숨쉬듯 증오할 뿐.-310쪽
언젠가 훌리안은 이야기란 작가가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지. -328쪽
훌리안의 모든 글 중 언제나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이, 사람은 기억되는동안에는 계속 살아 있는 거라는 말이지. ...나를 기억해줘, 다니엘, 비록 한 귀퉁이에 숨겨서라도. 나를 떠나보내지 말아줘.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331-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