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음마 라모츠웨는 생각했다.
사람의 머리는 작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하늘에 벌떼가 가득하듯이 수천가지의 기억과 냄새와 장소, 그리고 문득문득 떠올라 스스로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언젠가 겪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프레셔스 라모츠웨, 보츠와나 국민으로 광부였다가 숨을 못 쉬게 되어 돌아가신 오베드 라모츠웨의 딸이다. 아버지의 인생은 기록된 바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누가 적어 놓는단 말인다?-23쪽
어떤 사람은 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옛날 선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쳐서 사람들 마음속에 정착된 것이지 싶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까.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쨋든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도 신은 이곳에 계셨다. 그때는 그분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신은 유대인의 땅에만 사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이곳 아프리카의 바위와 하늘, 그분이 좋아하시는 곳에 살고 계셨다. 사람이 죽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면 신은 그곳에도 계실테지만 그분에게 특별히 가까이 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분이 그것을 원하실 리가 있는가?-27-28쪽
누구나 어떻게든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법이었다. 가족에게서 뚝 떨어져 나와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1쪽
이 남자는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지,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의 돈이고, 그녀의 장래다. 게다가 자기 바지 지퍼가 열린 것도 모르는 주제에. 여자가 어쩌고 운운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확 말해버릴까보다.-71쪽
이곳은 건조한 땅이었다.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싹 말라빠진 나미브 사막까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누런 땅, 칼라하리가 있었다. 하얀색 미니밴으로 간선도로에서 뻗어 나가는 도로 중 하나를 타기만 하면, 오육십 킬로미터도 채 못 가서 차바퀴가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 꼼짝 못하고 헛돌기만 할 것이다. 나무나 풀이 서서히 줄어들어 사막처럼 보일 것이다. 드문드문 헐벗은 곳이 보이고 회색빛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며 사람이 사는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단한 갈색의 이 거대한 마른 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츠와나 사람들의 운명이었고,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농사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짓게 되었다.
칼라하리로 가면, 밤에는 사자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사자들은 거기, 광활한 풍경 속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포효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면서. 음마 라모츠웨는 젊었을 때 친구와 함께 멀리 있는 소 사육장을 찾아 그곳에 본적이 있었다. 그곳은 칼라하리 쪽으로 소들이 갈 수 있는 한계 지점이었고, 그곳에서 그녀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정수를 맛보았다. 이것이 바로 보츠와나 정서의 핵심, 조국의 본질이었다.-150-151쪽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화가 나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써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당분간은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171쪽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기 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토록 빨리 사라져 버린, 이 낯선 세상에 머무르려고 기를 쓰던 순간, 너무나 짧은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던 그 조그만 손이 기억났다. 아프리카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럴 순 없다.-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