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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주말 동안 클레어 키건의 소설 3권을 모두 읽었다. 

모두 분량이 적은 책인지라 부담없이 읽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부담없지는 않다.


이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세밀한 풍경과 정황 묘사로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대화라든지 등장 인물의 생각에서는 과감할 정도로 간결한 묘사로 일관한다.

그래서 키건의 글을 읽는 독자는 소설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녀가 이끄는대로 아일랜드의 가난하고 척박한 들판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엇이 당신을 그리로 이끄는거지?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면 당신은 좀 괜찮아질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 이들은 내가 손 내밀어야 할 그 누군가구나

큰 위로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위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거니까.....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라고 그렇게 물어보고싶다.


한 권의 소설이 독자를 자기 얘기로 온전히 끌어갈 수 있다면 좋은 소설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2007년에 출간된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첫 번째 단편집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작가는 1999년에 첫 단편집으로 윌리엄 트레버 상을 받았단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단편 <작별 선물>을 읽으면서 윌리엄 트레버를 떠올렸다. 

윌리엄 트레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를 소녀의 끔찍하게 억눌린 감정만큼 꾹꾹 눌러가며 쓴 이야기, 마지막 순간 공항의 화장실에 숨어 든 소녀의 곁에 나는 가만히 앉아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이제 울어도 돼, 맘껏 울어도 돼

그리고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가방을 다시 들여다보던 그 순간부터 공항 화장실 칸막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문을 잠글 때까지의 소녀의 하루를 다시 따라가며 소녀가 얼마나 강인하게 버텨냈는가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지독하게도 가부장적이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마찬가지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의 사제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제여,  그냥 계속 들판이나 걸으세요. 당신이 한번도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케이트는 당신을 버렸답니다. 당신에게 그녀는 결혼하는 신부로 불릴 뿐이지만, 이제 그녀는 다른 곳에서 자기 이름 케이트를 찾을거랍니다. 당신은 한 번도 진지하게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준적이 없었으니까요. 혼자 괴로운척 해봤자 우리 독자들은 다 안답니다. 당신 속에는 자신 밖에 없음을.....


<검은 말>에서 떠난 아내가 돌아와서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기다리는 브래디.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 아내와 자식의 어떤 감정도 인정하지 않는, 돈을 절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디건.

<물가 가까이>에서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데려간 아내에게 1시간을 주었다가, 1시간이 지나자 그대로 아내를 버려두고 차를 출발시켜 버리는 주인공의 할아버지.

가부장제에 흠뻑 빠져있는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여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또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형식으로 자신의 배신을 폭로해버리는 식으로, 또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그 어딘가로 떠나는 것으로 여자들은 다른 삶으로 조용히 빠져 나간다.

이야기 밖으로 나간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갔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녀들의 손을 잡고 응원해주고싶다.

괜찮아. 여기보다 나쁠 수는 없어. 

빛나는 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찾고, 당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가난한 집에 또 동생이 태어났다.

어린 소녀를 보살필 여력이 없던 엄마는 소녀를 잠시동안 친척 집에 맡긴다.

소녀는 친척 집에서 처음으로 보살핌을 경험한다.

소녀가 맡겨진 집에서 마신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한 맛이다.

그 물의 맛을 소녀는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30쪽)로 표현하며 6잔이나 마신다.

그 6잔만큼 소녀는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다.


무심하고 거친 아빠가 살기 힘들어서라고 치부해버려도 될까?

아니다. 친척집이라고 해서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한 것은 아니다.

소녀가 맡겨진 친척집의 부부는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그들의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이 그들을 뒤엎는다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무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 책의 압권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이제 보살핌을 받는다는게 무엇인지 알게 된 소녀는 친척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아저씨의 등 뒤로 다가오는 아빠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아저씨를 부른다. "아빠"

누구를 가족으로 여기는가는 혈연에 있지 않다.




읽은 3개의 작품 중에서 나는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왜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나와서인듯하다.

주인공 펄롱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사랑한다. 

아내와 5명의 딸들에게 배려하는 남편이자 아빠다.

미혼모였던 펄롱의 어머니를 내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계속 일하게 해준 미시즈 윌슨은 어린 펄롱을 함께 보살펴주기도 한다. 펄롱은 덕분에 어린 시절을 보살핌과 배려속에 클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간직할 줄 아는 펄롱이 좋았다.

우리의 일상은 사실은 너무 너무 사소한 매일로 채워져있다.

또한 그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한걸음 떨어져 보면 너무 사소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함이 바로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을 뒤집고 혁명을 일으키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극적인 사건일테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지켜가는 것은 그곳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소하고 사소한 작은 행동들이다.

석탄 배달을 갔던 수녀원에서 석탄 창고에 갇혀있던 어린 소녀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

나의 어린 딸들이 받아야 할 보살핌을 마땅히 그 어린 소녀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건 이런 펄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떤 과장도 없이 그저 펄롱의 하루와 생각들과 고민들을 묵묵히 따라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나는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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