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거나 아릿하거나 날카롭거나 뭉근하거나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7쪽)
1.
밥 한 그릇에 담긴 밥알 수보다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산다. 어떤 날은 한마디도 안하고 살고 싶어도 수 만 마디 말이 들려오고, 다른 날은 무한한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고 또 설령 그렇게 해낸 뒤에도 단 한마디 다시 들려오지 않는 날이 있다. 사실, 어떤 날에는 수많은 말이 내 삶에 밀려와도 단 한마디 말도 남지않고 가볍게 흘러나가기도 하며, 다른 날은 단 한마디 말도 수 만 마디 말같은 무게로 내 삶에 걸쳐 꼼짝하지 않고 짓누르기도 한다. 받아들일 수 없도 버릴 수도 없는 말이 내 몸 어딘간에 나도 모르게 생채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지나가는 날도 허다하다. 매일 이렇게 밥 먹는 것 이상으로 말(語)을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고 다시 먹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주워담지 못하고 어떤 싹이 날지도 모르면서도 쉼없이 뿌리고 있다.
말이 남기는 흔적은 몸 사이거리에 반비례해서 어쩌다 만나지도 못할 먼 친척이 던지는 말보다, 한 공간에 몸길 겹치며 밥알 주고받는 사람에게서 강력하다. 그 최근접거리에서 날아오는 말화살에 속수무책으로 상처를 껴안아야 할 때가 태반이다. 어떤 말은 흘려보내야 좋은 것이 있고, 어떤 말은 쓸려가지 못하게 여울목처럼 꼭 남겨두면 유익한 것이 있다지만, 말이란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지 모른다. 말하기는 손에 잡히는 모양은 없어도 밀물과 썰물처럼 내 삶을 두드리며 드나든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내던지는 말은 하루에도 수만번 나를 절벽까지 밀었다 고공까지 들여올렸다 한다.
2.
전업 작가인 은유의 글쓰기는 자가 상담에 버금간다. 최근 그의 책, 『다가오는 말들: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2019)(이하 다.말)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수집하여 묶은 에세이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그의 글은 ‘연결’이 모토다. 그 ‘연결’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도록 돕는 과정이며, 사람이 ‘연결될수록 강해지’는 삶을 기대하는 작가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글의 소재는 ‘다가오는 말’들이다. 다분히 누군가의 ‘글’이며, 누군가 겪고 있는 ‘삶’이며, 누군가 남긴 ‘말’이다. 이 ‘글’과 ‘삶’과 ‘말’을 한데 묶어 상징하는 한 표현이 ‘다가오는 말’이다. 그의 글은 ‘다가오는 말’을 자신의 삶에 담아 사유하고 응답하는 결과물이다.
나는 그의 글이 ‘글쓰기 치유, 즉 ’글쓰기를 통한 자가 상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은 자신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상담과 같아서 그의 글과 글쓰기는 자신이 자신에게 처방하는 치유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그의 글쓰기는 자신에게 전방위적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말들 속에 담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특히 자신이 자신을 향해 던지는 말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3.
<다.말>은 여든 한 편의 글이 실려있다. 글마다 상황과 시점과 대응하는 방식, 관련된 인물이 다르지만, 결국 주제는 일관되고, 말하고 싶은 바도 명확하다: 약한 자들, 변방에 있는 자들, 드러나지 않는 자들, 애써도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 같은 일을 해도 엄격히 다르게 대우 받는 이들, 자기 삶보다 다른 이를 위해 무한 수고해야 하는 이들. 그들이 글쓰기로서 자기 존재감을 스스로 개척해간다는 것. ‘개척’이라는 내 표현은 조금 진부하다. ‘재발견’이자 ‘쟁취’라고 해야겠다. 이 모든 글 속에는 ‘한 여성이 이 세계에 태어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과연 자기다운 삶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자기 권리를 당연히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글 끝마다 말끝마다 실려 나온다. 이 책 속 글쓰기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 될 것 같다.
“태어나면서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202쪽)
생각해보면, 이 글에서 무한 반복하는 ‘여성’은 그저 여성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 글에서 풍겨 나는 여성의 여성스러움을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말로 예단해도 변명할 수 없을 정도지만, 오히려 이 글은 ‘남성으로서 이 시대의 여성의 상황’에 직면한 ‘사람’을 위한 글이라고 해야겠다. 예를 들면, 아직 어른 나이가 되지 않은 남자 청소년, 군 입대를 앞둔 청년, 취업 준비생, 이제 막 신입으로 일터에 내몰린 사원, 21세기를 살아도 19세기 사랑관이나 인간관에 머물러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도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 등등 ‘여성 아닌 남성’으로서 ‘약자로, 변방에 있는 자’로 자리하는 사람들 말이다. 설령, 그들이 누구인지 이렇게 까지 단정할 필요는 없다 해도, 이 책이 그들에게 다가가 삶을 다독이고, ‘나는 나로서 당당하다’는 말을 나에게 남길 수 있는 용기를 주기에는 충분하다. 굳이 여성 투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이 선천적이며 무노동으로 당연하게 누리는 남성권을 자랑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을 덮으면서 떠오른 나의 생각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대적 약자이며, 스스로 돌보거나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유랑하기 좋은 본성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의 모든 상황은 곧 남성의 상황이기도 하며 살아있는 것들이 함께 대면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다.
4.
교회에서 함께 읽기로 추천했던 이 책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줌이라는 매체와 저녁 시간이라는 현실 상황, 또 참여자 중 한 분이 긴급한 일이 생겨서 오래 진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참여자의 미묘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또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름 ‘다가오는 말’로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재생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이 조금 설익은 듯해서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리한 바를 몇 마디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우선, 이 책의 장르다. 나는 이 책이 글쓰기를 토대로 한 상담 또는 타인의 세계를 글쓰기를 통해 이해해보려는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하듯 ‘글을 통한 연대와 연결’은 글쓰기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이들이 갖는 궁극적 지향점 중 하나겠지만, 이것은 평소 가볍게 글을 쓰는 나같은 이들도 새겨두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의 글쓰기가 타인 중에 가장 타인인 ‘나’와 내가 연결되는 좋은 도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이 책의 주제다. 이 책은 글쓰기를 통해 ‘사람’이 자기 속상처에 새살을 돋아나게 하는 영양분을 얻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나는 글쓰기의 최대 독자가 자기 자신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자기 글은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한 목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누구든지 잠자던 ‘나의 글쓰기’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을만하다. 오늘도 수많은 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고’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 책의 성과다.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격려다. ‘글을 씀으로써 자기 치유를 경험한다’는 말을 신뢰해보자는 것.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 ‘글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를 말하기보다 오히려 ‘글을 왜 쓰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글쓰기가 외부로, 바깥으로, 의도적으로 다듬어져 생산되는 것이 대세지만, 아주 소중한 글은 자기 안으로, 자기에게, 자신의 삶에 남겨두는, 자신이 유일한 독자인 글이다. 그 글들은 자기라는 타인을 위로하며, 자기 밖의 타인을 마음에 두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점검하는 자기 의식(儀式)이라 할만하다.
넷째, 기독교 삶의 방식에 유익하다. 신앙이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 글쓰기는 기독교 삶의 방식의 기본이다. 날마다 ‘다가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대한 ‘나’의 당연한 반응이 글쓰기다. 예를 들어, 아침 성경 한 구절에 대한 나의 ‘글쓰기’가 나의 삶의 터전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어떤 경우이든, 히브리 전통에 근거한 기독교 신앙은 ‘한 마디 다가오는 말’에 대한 자기 반응을 글로 남기는 일을 권장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을 참고한다면, 신앙의 글쓰기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말’을 사유하는 하루의 삶이다. 달리 말하면, 아침에 다가 온 한 구절 ‘말’을 기억하고, 나의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서 되새기고, 저녁에 그 삶을 지나온 나에게 내가 말해두는 것이다.
5.
한 권 책은 한 저자가 남긴 글쓰기의 집합이며, 자기 삶의 결정체라고 할만하다. 모든 책이 세상으로 나와 탁월하고 고급스럽게 보인다면 좋은 일일 테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남기는 글은 그 외형과 기법과 명예와 상관없이 세계에서 유일한 자기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다. ‘다가오는 말’에 대한 나의 즐거운 응답을 선물처럼 남겨보자.
"아름답거나 아릿하거나 날카롭거나 뭉근하거나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