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는다고 기도를 한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비'라는 글자 하나만 써 온 스님이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처음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의 일인데,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비가 내릴까. 비가 오려면 구름이 만들어지고 대기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이지, 사람의 간절함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이것이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른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니 기도로 비를 내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믿어질 리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비가 내리는 기적이 아니라, 스님이 평생 써 온 '비'라는 글자였다.
꼬마 스님은 글을 읽지 못한다. 다른 스님들이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동안 그가 쓸 수 있는 글자는 오직 하나, '비(雨)'뿐이다. 스님은 매일 마당을 쓸고, 물을 긷고, 밥을 짓고, 채소를 가꾸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 글자를 쓴다. 그렇게 스무 해가 흐른다.
처음에는 한 글자밖에 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스무 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쓸 수 있는 글자가 하나뿐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수많은 글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림책 속 '비'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자 雨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닮았다. 글자 안에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보이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 한 글자가 그림책 속 수많은 그림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스님은 평생 같은 글자를 썼지만, 매일 같은 비를 쓴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쁜 날의 비와 슬픈 날의 비가 달랐을 것이고, 마음이 평온한 날과 답답한 날의 붓끝도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자는 하나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매일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자를 하나밖에 모르는 스님이 더 이상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간절함'의 의미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기도하고, 소망하고, 좋은 결과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게 바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님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미 스무 해 동안 자신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왔다.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채소를 가꾸고, 매일 한 글자를 썼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도 아니었고, 언젠가 특별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하루 반복했을 뿐이다.
나는 그 반복이야말로 간절함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간절함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바람을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일도 다시 해 보고,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님이 스무 해 동안 글자를 썼다고 해서 실제로 비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기도가 자연의 질서를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그림책이 말하는 기적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이 쓴 글자가 비가 되어 세상을 적시는 장면은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는 사건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쌓아 온 마음이 마침내 세상에 닿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행동들이 모여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적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우쉬궁 작가는 이 그림책을 완성하는 데 약 3년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 역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고치면서 스님처럼 자신의 '비'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다시 제목을 바라본다.
'비'
짧은 글자 하나에 이토록 많은 시간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비는 사람이 기도한다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분명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을 묵묵히 살아 내는 동안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