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김벼리라는 낯선 여자아이를 만나 겪은 일들을 여러 인물이 각자의 시선에서 들려준다. 아이들의 뒤를 밟는 수상한 여자아이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처음에는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점차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휼민이가 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
책을 읽다 보면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말에 삐딱하게 대꾸하고, 방문을 닫은 채 대화를 거부하고, 가족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김벼리라는 아이가 나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단절되었던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생기고, 아이들의 일상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어르신들도 제 역할을 찾아간다. 마을의 미용실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고, 아이들의 활기와 움직임은 마을 전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다양한 가정과 관계의 모습도 담겨 있다.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문제, 조손가정의 현실, 세 친구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등장하면서 달라지는 관계와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아이의 감정, 학교폭력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특히 어른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이들의 행동으로 뭔가가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어른들이 도움을 주고 상황을 정리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인터뷰 형식의 구성도 인상적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독자는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를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생각하면 장면과 시선이 빠르게 전환되는 셈인데, 이런 구성은 짧고 빠른 전개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독서 방식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물론 김벼리라는 인물과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변화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등장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서로 무관심했던 이웃들을 연결한다는 설정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형제자매와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어른들은 남의 집 아이도 함께 돌보며 살았다. 이 책에서도 벼리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형제자매뿐 아니라 친구의 형제자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를 돌보기 시작한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런 따뜻한 관계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책에서 누군가의 성장은 비극적이고 아픈 경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곁에서 손을 내밀고,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함께 책임을 나누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만의 몫이 아니듯, 아이들이 겪는 문제 역시 아이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성장을 도와야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이 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행동 역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사족: 책 디자인이 상당히 레트로다. ㅡㅡ 서점에서 눈으로 보고 고를땐 망설여질듯. 작가 이름이 아니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