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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나랑
  •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15,750원 (10%870)
  • 2024-09-02
  • : 17,519

이 작품에서 화자 닐은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엘리자베스 핀치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그녀의 강의와 사유, 그리고 그녀가 깊이 천착했던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이른바 ‘배교자’라 불린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소설은 한 인물을 추억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역사와 신념, 그리고 삶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율리아누스는 이미 기독교가 제국의 중심이 된 시대에 고대 다신교의 부흥을 시도했던 황제였다. 그의 집권은 예정된 결과였을까, 아니면 여러 상황이 겹쳐 만들어낸 예외적 사건이었을까.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가 필연이라 부르는 역사적 흐름이 실은 수많은 우연의 중첩 위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의 강의를 듣게 된 과정 역시 치밀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맞물리며 이루어진 선택이었고, 그 만남은 이후 그의 사유와 인생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숙명처럼 해석하곤 하지만, 소설은 그것을 사소한 결정에서 비롯된 연쇄 반응으로 바라본다. 삶을 바꾸는 계기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뜻밖의 선택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핀치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가 남긴 미완의 노트와 단편적인 기록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의 회상 또한 완전한 사실이라기보다 각자의 경험이 덧붙여진 조각들이다. 역사가 그러하듯, 한 인물의 모습도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율리아누스가 황위에 오르게 된 과정 또한 권력 다툼과 정치적 공백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겹친 결과였다.


결국 닐이 그려내는 엘리자베스 핀치는 절대적인 초상이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녀를 기록했다면, 전혀 다른 모습의 인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믿는 필연은 정말 필연인가, 아니면 피할 수 없었던 우연을 뒤늦게 정당화한 해석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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