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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나랑
  • 조선 미술관
  • 탁현규
  • 15,120원 (10%840)
  • 2023-02-22
  • : 4,607

내가 꽤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그래서일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다닥 읽어버렸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 중 풍속화나 기록화 만큼 생생한 자료가 있을까? 사진이나 영상이 없었던 그 시절 이야기다. 


얼마 전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데, 그 암각화의 그림을 통해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듯이 조선의 풍속화와 기록화들도 그런 역할을 해낸다. 한국의 기록문화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하는데, 그림이라고 덜할 리가 있나. 그러나,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면 이해도는 당연히 올라간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풍속화와 기록화들을 소개한다. 익히 알고 있는 그림들이지만 그 설명을 함께 읽으면서 그림을 보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도슨트 설명을 듣느라(설명 앱을 켜고) 그림 앞에 멈춰 있는 사람들 때문에 사실은 짜증이 날 때가 많다. 눈으로 보고 싶은 작품을 관람자의 머리만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공부라면 이렇게 책을 통해 먼저 공부를 하고 가면 어떨까? 미술관에선 누군가의 설명보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감상을 했으면 좋겠다. 아,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래서 조선미술관에서는 궁궐 밖의 사생활을 담은 1관과 궁궐 안의 공공 행사 기록을 담은 2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기획했다. (p.9)


​새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만이 새것을 만든다. (p.13)


​놀이 장면을 그릴 때 '사람들을 다 앉히지는 않는다'는 법칙(p.20)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그런 법칙이 있다기보다 그런 구도와 구성을 통해 그림이 살아있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다. 놀이하는 선비들을 그린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다. 조영석의 현이도는 이후 조선 양반 풍속과 평민 풍속화의 출발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김홍도가 그린 <귀인응렵>은 관복을 입지 않았으니 선비가 아닌 관료 신분이며, 매사냥을 떠나는데 사냥개와 함께 있지 않고 사슴이 그려져 있다. 언덕이 사슴 다리를 가리고 사슴 다리가 말 다리를 가리고 있어서 '다 그리면 재미없다'(p.35)는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남자를 김홍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겸재 정선의 <사문탈사>는 66세에 그린 것과 80세에 그린 작품이 있는데 저자는 이 두 그림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66세때 그린 그림을 뒤집으면 80세 때 그림의 구성이 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라고 한다. 그림의 좌우를 반전시켜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소를 탕 사람은 율곡선생이지만, 그림 속 배경은 정선이 살던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름드리인 측백나무가 있다. 또한 정선은 중국물소를 그리던 66세 때와 달리 80세에 이르러서는 황소로 바꾼다.


​이런 정보를 갖고 그림을 보면, 그림이 다시 달리 보인다. 


김득신의 <밀화투전>이라는 그림은 김득신이 그린 풍속화첩에서 유일하게 실내 장면이다. 아무래도 도박을 하는 장면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김득신은 초상화에서 사용했던 명암법을 풍속화로 넓혀 사람들의 얼굴에 명암을 넣었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상류사회의 놀이장면이 나온다. 선비 숫자와 기녀 숫자가 짝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임하투호>에서는 기녀가 한 명만 나와서 "짝 안 맞으면 결코 놀지 않으리'란 법칙에서도 예외가 있다고 알려준다. <납량만흥>을 설명하면서는 우리 민족의 음주가무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아야 술과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며 그러한 풍토적 차이에서 우리의 음주가무가 성행했으리라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납량만흥>에서는 우리 춤이 하체가 아닌 상체 중심의 춤임을 설명해준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기녀와 선비의 놀이에서 늘 주인공은 기녀이며, 그림 속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해본다.


​만약 내가 혼자서 그 그림들을 보았더라도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며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알고 보면, 그림에서 이런 장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저자가 2관에 배치한 조선 궁중기록화는, 솔직히 말해서 내 관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어서 앞부분에 비해 재미가 덜했다. 다만, 문화절정기인 숙종 때와 영정조 시절의 그림에서 디테일한 차이가 나타나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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