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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나랑
  • 이루의 세상
  • 정설아
  • 13,050원 (10%720)
  • 2025-07-21
  • : 3,819

"그럼...죽음의 문이 어디에 있는데?"

내 물음에 아빠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미지의 세상에 있을 것 같다."

"미지의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 말이야. 바다 깊은 곳이랄까?"

-중략-

"네가 아빠를 좀 보내주라."

"어딜?"

"바다지, 어디긴 어디야. 그게 네가 해야 할 역할 같다."  p.16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뉴스 속 죽음은 현실감이 없으니 제쳐두더라도, 

늘 함께 하던 반려동물의 죽음이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들의 죽음도 심심찮게 맞닥뜨린다.

사람마다 그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다 다르다.


이루는, 

갑자기 아빠가 죽은 후, 집안에서건 밖에서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소설이 이루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잘 느낄 수 없다.

별 문제 없는 아이 이루에게 죽은 아빠가 '죽살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질 뿐이다. 아빠가 신종 귀신이 된 것인지, 아빠의 진짜 모습을 잊은 것인지, 이 일이 꿈인지 헷갈리지만,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루는 생각한다. 귀신들에게서는 항상 사연이 넘쳐 나고, 귀신이 된 이유와 자주 나타나는 장소, 하는 행동 등이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후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다닌다는 귀신은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소생'이라면, 아빠는 소생한 걸까? 그렇지만 아빠는 자신이 살아난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만나게 된 아빠귀신, 아니 아빠와 이루는 아빠가 원하는 바다로 보내주기 위해서 함께 움직인다. 『이루의 세상』이라는 제목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하였다. 


​엄마나 주변 사람들은 이루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루는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죽은 후 대부분의 어른들은 '엄마 마음'을 잘 헤아리라고, 말 잘 들으라고 말했다. 이루는 '어른들은 아이가 다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p.79)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다친 사람은 이루 자신이었다. 


​이루의 세상에서는 핏빛 비가 내리거나, 나무가 되어 혼자만 움직일 수가 없다. 구렁이 모습의 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빠가 굳은 표정으로 넌 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루  자신도 나무가 아니란 걸 알고 나무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이 사라지게 해줘!'

속으로 외치는데 아빠가 말했다.

"말을 해야 알지. 괴로우면 괴롭다고.”(p.99)


​이루는 사람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빠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슬프고 두려움이 많이 앞섰다. 이루가 귀신 책을 들춰 보고 공포물을 찾아본 것은 무섭고 싶지 않아서, 잘 견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루에게 아빠는 말한다.


"그런데 그거 아냐? 귀신이든 좀비든 강시든,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 만든 존재야.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 거지. 사람들은 귀신이 한 맺혀서 나타나는 거라고 하지만, 어쩌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한이 남아서 귀신을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어. 죽은 사람을 무섭거나 슬프거나 황당한 존재로 만들어 놓아야, 자신이 느끼는 무서움, 슬픔, 황망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P.147~148)


이루는, 자신이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했는지 깨닫는 순간, 땅이 흔들리는 지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만든 세상은 두렵고 무섭고 슬펐다. 이제 아빠의 세상을 보고 싶었다. 


이루가 자신만의 세상, 두렵고 무서웠던 그곳에서 나와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이끌어내 주기는 어려웠다. 자기 스스로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음이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툴툴 털고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죽음과 이어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에겐 더욱 그러하다.


​이루는 어린 나이에 아빠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이루를 걱정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루의 세상은 그렇게 좀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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