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상큼발랄할 에세이일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막연히 그런 책일 거라 생각했다. 최지은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건 완벽한 나의 실수이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작가의 마음이 읽혀졌다.
나는 가족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부분보다, 특히 나는 가족이나 집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정한 편이다. 살갑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최지은 작가는,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를 흐릿하게 기억합니다. 처음은 나의 이름을 읽고 쓰는 것. 다음으로 할머니의 이름, 아빠, 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큰아빠, 큰엄마, 작은고모, 작은고모부...... 가족들의 이름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호칭이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는 것, 호칭과 이름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나의 손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잠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단란한 놀이였습니다." (p.22)
"나의 불행과 어머니의 부재를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어머니의 이름을 나의 손으로, 나의 글씨로 받아 적어본 적 없으니까. 단 한번도 "엄마"라는 말을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에게 어머니는 '없는 세계'였습니다. (p.22)
어린 시절, '나'가 가지지 못한 것, '나'에게 없는 그것으로 인해 친척 집에 가면 늘 뭔가를 망가뜨리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것. 사람들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실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면, 부족하거나, 정상이 아닌 것으로 결정해버린다.
작가에게 가난과,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조손가정이라는 '사정'은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형편에 무엇이든 망가뜨리면 할머니가 곤란해질 것'(p.73)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는 '만지는 것'보다 '보는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밭에서 눈을 뭉치고 굴리는 것보다 눈 내리는 정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파도 속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저만치서 바닷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물건을 사러 가서도 "착용해보세요" 권하는 직원의 친절에 "그냥 볼게요"로 답하는 것이 편해졌다. 물론 내 것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p.73)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작가의 환경이나 작가의 주변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성향상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그것이 나의 모자람과 나에게 없는 '부재'의 대상때문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작가는 글을 써서 내보낸 자신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송신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작가가 원하는 대로 읽지 않은 독자일 수 있다. 나와 작가의 상황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 않겠나. 많은 부분, 나와는 다른 상황인식, 그리고 다른 감정선을 느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에는 좀더 밝고, 가벼운 글로 다시 만나고 싶다.
"어려서 할머니의 돌봄을 받고, 할머니로부터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운 내가 이제야 할머니를 돌보는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은 예외 없이 완전한 타인의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흙이 되고, 구름이 되고, 바다가 되어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도록."(p.84)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두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p.105)
"나는 순한 어린이였습니다. 크게 말썽을 피우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어린이가 아니었어요. 조손가정의 어린이로서 '나는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말자, 무엇이든 적당히 잘하자' 하는 마음이 늘 앞섰습니다. 조용하고 희미하지만 커다랗고 무변하게 늘 내 앞에 서 있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그때의 어린이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걱정했을지 모릅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것이 나보다 더 크게 자라날까봐."(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