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은유 작가의 특강을 들었던 2022년 12월에 읽었던 책이다. 이번에 독서동아리 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읽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에게 눈길이 가곤 했다.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생의 초기 세팅이 이뤄지는 시기에 사막 같은 곳에 내던져진 아이를 뉴스에서 보고 나면 오래도록 심란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일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水無田 氣流)의 말을 다이어리 첫장에 적어두고 틈틈이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 (p.7)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평소 이런 생각을 했기에 좀더 생생하게, 그리고 절실함을 담아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까지는 그래도 학교도 다닐 수 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그 아이들은 학교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주민번호]가 없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아동 청소년은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하고 '나중에'를 강요받는 사회적 약자다. 연애도, 술도, 놀이도 대학 가면, 어른이 되면 하라는 말을 듣고 크니까. 그런데 그 '나중에'조차 빼앗긴 아이들, 약자 뒤에 가려진 이중의 약자가 있는 것이다.(p.9)
아이들은 알까? 누군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을.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애기회를 설계하고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시혜나 휴머니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다.(p.32)
이 아이들은, 우리처럼, 우리 아이들처럼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고 있다. 자기 나라를 떠나서 이곳을 선택해서 온 아이들이 아닌데 그들에게 '왜 여기에 왔냐고, 한국에서 사냐고' 묻는다.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어쩌다보니 한국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너네 나라로 가라'고 한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주아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유학을 오거나, 취업을 하거나, 국제결혼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에 와서 살면서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가 보면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다문화교육이란게 글로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그 아이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편견을 깨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터득되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에서, '다문화교육'이라는 것을 일부러 만들어서 할까? 우리나라가 유난히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대해 보수적이다보니, 오히려 잘 볼 수 없어서 잘 몰랐을 수 있다. 이제 어느 도시에 가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보이는 곳도 있다. 이제 이것을 교육받아서가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어야할것 같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게 된 건, 아마도 제가 한국 왔을 때 친구들이 저를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영어를 못하거든요. 그런데 외국인이니까 친구들이 저를 처음 보면 “헬로" 하고 인사를 해요. 중학생이 되니까 다른 학교 친구들도 만날 기회가 생기잖아요. 이 친구들도 저한테 "헬로” 하더라고요. 그럼 저는 한국말로 "안녕"하고 인사하죠. 그러면서 한바탕 웃고 친해지고요. 제가 차별을 안 당하니까 저도 친구들을 차별할 생각을 안 했죠.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