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17.
『시녀 이야기』를 다 읽음.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을 마련한 뒤 이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완전한 각성을 하지 않은 인물을 화자로 둔 것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이라가 화자였다면 지금과 같은 작품이 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에서 기록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리를 만들어낸 것도 인상적이었고, 에필로그의 세미나에서 길리어드를 다루는 방식에서 역사가 되풀이될 것 같은 실낱 같은 불안함이 엄습하게 만드는 것도 오래 기억이 남는다. 『증언들』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아직 『눈먼 암살자』도 있고 『그레이스』도 있지만...
25.3.19.
『겨울의 언어』 2부 읽기. 책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1부에 비해 호흡이 짧다. “책은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장 깊은 수준의 경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113)는 문장에 잠시 오래 머물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경청을 하지 못했었는지 생각하며.
25.3.21.
『이만큼 가까이』 읽기. 책을 멀리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정세랑의 책에 손이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몇 년 전 앞부분만 읽고 오랫동안 덮어두었다가 처음부터 읽기. 정세랑표 청춘소설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화자의 목소리는 굉장히 덤덤해서 분위기가 달라 보이기도. 3분의 2가 지났을 때 큰 사건이 이미 발생했는데 이후에 어떻게 내용이 이어질지..
남의 돈 처먹고 잘살 줄 알았냐는 말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남의 돈 처먹고도 못살면 쓰냐는 말이 나오더라. (80)
└내가 아는 정세랑 소설의 따뜻한 매력은 이런 것.
25.3.23.
『이만큼 가까이』 완독. 무척이나 힘들었을 시기를 화자가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친구들과의 느슨한 연결 때문일지도. 자주 만나지도 마음 속 깊은 얘기를 항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심하게 호신용품을 툭 던져주는 그런 연대. 소설처럼 큰 사건이 아니어도 저마다의 상처를 남기는 시기를 어떻게 지나고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찬겸이의 엘리트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 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일단 복합성 애도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그 시기를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를 요구하지도 직언을 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얕은 수와 비굴한 계산까지도 웃음으로 넘겼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226)
“내 생각에, 별로 좋은 나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언제 어디에 있고 싶어도 결정권이 없고, 나이가 들면 지금이 언제인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을 못하니까."
"언제, 어디에."
내가 반복했다.
"시공이야.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야." (284)
『멀고도 가까운』 읽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