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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님의 서재

24.1.7.















『소년이 온다』를 다 읽음. 읽으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미지를 안긴 것은 5장이었고, 가장 감정적인 에너지가 넘실거리던 부분은 6장이었다. 3장을 제외한 나머지 챕터는 2인칭이거나 화자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담기는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독백 역시 작품을 읽는 독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모두 2인칭으로 서술할 때의 효과를 가리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을 읽는 당신에게 이 모든 목소리가 닿길 바라는 마음. 작가 후기와 같이 읽히는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여전히 광주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김서린 안경으로 비치는 세상을 볼 때처럼 마음이 산란해졌다.


전구 속 필라멘트처럼 가느다란 신경의 각성을 따라 당신은 눈을 뜬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불빛이 침침한 복도와 어두운 응급실 유리문 밖을 둘러본다.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166-167)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173)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213)


나는 가방을 열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앉아 불을 붙었다.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은 느리게 탔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한 쪽 발목이 차가워진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무덤 앞에 쌓 인 눈 더미 속을 여태 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215)
















『어비』를 다 읽음. 남은 단편 4편을 한 번에 쭉 읽었다.


「광장 근처」_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중적인 심리와 그 모순을 포착해내는 김혜진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군데군데 보여서 흥미롭게 보았던 작품.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훨씬 더 직접적이다. 온갖 운동을 하고 서명을 받으면서도, “듣고 따라하는 동안엔 모두가 괜찮다고 믿을 법한 말들”(162쪽)을 선창하고 복창하면서도, 가판대도 없이 노점을 열며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에겐 “조그마한 틈도 내어주지 않으려고”(163쪽) 하는 사람들. 오히려 매일 같이 아이를 맡기고 어딘가 일 같지도 않은 듯한 일을 하러 떠나는 남자와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를 맡아주는 화자가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에게도 연대는 없고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애쓰는 모습만 남아있지만, 그래서 더 씁쓸한 작품. 해설을 인용하자면, “’연대’의 가치가 아니라 자기 삶의 최소한의 안위가 보장될 ‘가능성’에 투신하는 모습이야말로 이 세대의 자화상”(253쪽).


「줄넘기」_헤어지고 난 뒤의 상처와 헛헛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심지어 여자의 집에 찾아가 우편물을 뜯어보는 화자의 모습은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지만, 노인의 “숨소리처럼 고요하고 유일한 리듬”(177쪽) 같은 줄넘기에서 세계를 마주한 인간의 어떤 태도를 본다. 나에게 어둠과 슬픔을 주는 세계에 완강히 저항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박자를 만들어가며 “지구에서 잠깐 벗어났다가 금세 되돌아오는 것”(183쪽)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어떻게든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태도.


「와와의 문」_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을 쉽게 생각하고 소비하는지, 그 깊이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어쭙잖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작품. 화자는 와와가 겪은 일들을 들어주고 재해에 대해 질문하고, 당신이 지금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며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는 와와가 겪은 재해를 글감으로 소비하고 싶었을 뿐이고 와와가 겪었을 어려움과 아픔을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는다. 다큐를 보면서 그들의 처지를 안쓰러워하지만 “때때로 너무 무능해 보여서 화가 났다”(197쪽)는 그의 말처럼.


「비눗방울맨」_김혜진 작가의 작품에서 광장이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긴 하지만, 유독 광화문 일대가 이 작품집에서 자주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위를 하고 경찰들은 시위를 통제하고 역을 막아버리지만, 화자는 이런 온갖 목소리들에 담긴 메시지보다 자신에게 짐이 되어버린 철수를 어떻게든 너에게 돌려주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광장에서 어떻게든 달라붙어 살아왔을 비눗방울맨의 사연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한가로울 때는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철수를 잃어버린 뒤에는 짜증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어버렸을 뿐.















『지구의 짧은 역사』 1장 읽기.

 















『서양철학사』 다시 읽기 시작. 지난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오래되었다)에는 고대 그리스까지만 읽고 끝났고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덧) 이후 여행을 떠나면서 비행기 안에서든 여행 중이든 책을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나의 욕심은 이미 가득찬 짐짝 속에 세 권의 책과 크레마를 집어넣게 만들었다. 그리고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 책들은 돌덩어리처럼 나의 어깨를 짓눌렀으니... 새벽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뽈뽈거리며 쏘다니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잠시나마 시간이 있을 때는 뻗어버리기 바빴고, 비행기 안에서는 여행기를 쓰거나 잠들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결국 그 책들은 딱 한 번 펼쳐져본 채 나와 함께 돌아왔고... 다시 일상에 적응하는 동안 책들엔 다시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밀렸던 기록을 남기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마무리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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