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30.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완독.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만 멀티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작가가 설정한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백말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도 내가 태어나면서 자리하게 된 위치와 관련이 있겠지. 있었지만 근거 없는 낭설로 한순간에 존재가 지워지는 세계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더 크게 들리는 건 삐삐를 통해 전달되는 연대의 목소리.
24.12.31.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완독.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3부가 나에게는 더욱 인상적이었고, 말미에 등장하는 2045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불사에 대한 이야기)는 가볍게 읽었다. 전반적으로 각각의 주제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개괄만 보여주는 교양 강좌의 느낌. 강의를 책으로 묶었을 때 내가 느끼던 아쉬움들이 그대로 있었다. 일례로, 왜 법의학자가 “인권주의자의 향기를 더 강하게 내뿜는” 직업인지 저자의 근거를 명확히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3부의 연명의료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사례들은 흥미로웠고, 나름 의미 있는 독서였다고 마무리할 수 있을 듯하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4년 8월 전국의 만 20살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임종을 원하는 장소로 57.2%가 집을 선택했다. 다음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 요양원 순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통계청 사망 통계에 따르면, 1989년에는 사망 장소로 집이 77.4퍼센트, 병원이 12.8퍼센트 비율이었으나, 2012년에는 사망 장소로 집이 18.8퍼센트, 의료기관이 70.1퍼센트, 사회복지시설 등의 기타가 11.1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223)
우리나라 통계도 있지만, 실제 미국 통계를 보면 전체 보건 의료 예산의 10~12퍼센트가 삶의 마지막 기간 1년 동안에 쓰인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쓰는 비용이 거의 5퍼센트가 넘는다. 삶의 마지막을 간신히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지출되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 마지막 비용이 바로 중환자실 비용이다. 몸의 모든 혈관과 모든 구멍에 줄을 달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실 굉장히 비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죽음에 대한 대화가 단절됨으로써 오는 가족 간의 비극,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모님이라면 어떤 자식이라도 대부분, "우리 부모님 꼭 살려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고생 많으셨던 부모님이라서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원한 경우 대개 말기암 환자이다. 사실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두고 대화하지 않는다. (225)
우리나라는 항암제를 임종 1개월 전에 30.9퍼센트의 환자가 사용한다. 사실상 임종 1개월 전이면 이제 삶이 얼마 안 남았을 때다. 이때는 삶의 마지막 정리를 위한 통증 조절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통증 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모르핀 사용은 2.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래도 미국은 50퍼센트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2.3퍼센트에 불과한 것일까? 이것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의 문제다. (227)
물론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 봐도 대만이나 일본을 제외한다면 비할 데 없이 매우 우수한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모르핀 사용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예산을 삭감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처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환자가 통증이 심할 경우 이를 처방해서 통증을 없애야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마지막까지 본인의 여러 가지 일들, 자식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이라든지 삶의 정리라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임종 환자의 33.6퍼센트가 응급실을 사용한다. 이것은 모르핀 사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통증 억제가 안 되니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임종 1개월 전에 응급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불편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227-228)
『소년이 온다』 다시 읽기.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읽는다. 그때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면 이번엔 전에 구매한(노벨상 수상 전이다) 특별양장판으로. 동호의 이야기가 나오는 1장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10여 년 전과 달리 한강 작가의 전작(前作)을 좀더 읽은 뒤에 읽는 『소년이 온다』는 이전보다 서사적인 측면이 강해진 느낌이 있는데, 아무래도 광주라는 소재가 뿜는 강렬한 힘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를 비추는 한강 작가의 문장은 시신들과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동호의 모습을 가리키며 자신만의 인장을 찍는다.
25.1.1.
『소년이 온다』 읽기. 어슴푸레하기만 했던 읽기의 기억이 3장의 은숙을 보자 선명하게 떠올랐다. 생채기처럼 남아 날카로운 통증을 남기고 숨을 몰아쉬게 했던 문장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100)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103)
25.1.4.
연희동을 돌다가 합정까지 가서 문지살롱 방문. 마감 한 시간 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넓고 아늑한 공간과 문지 책들로 가득한 곳, 음악 선정도 마음에 들었다. 옛날에 나온 듯한, 그래서 처음 보는 책들도 많이 있었는데, 문학과지성 작가론 총서가 90년대에 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보르헤스』에 눈길이 가긴 했으나, 사놓고 또 읽지 않을까봐 망설이다 결국 사지 않았고, 백은선 시인의 추천 도서만 사서 나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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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시인의 추천도서는 킴 투이의 『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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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
『소년이 온다』 읽기. 4장을 읽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난폭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새삼 실감하며 읽는다. 계엄 사태 때 종종 보았던, 10년 전의 독서였음에도 잊혀지지 않았던 문장들도 함께.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115-116)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