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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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님의 서재
24. 9. 4.














『아가미』를 읽다가 우리가 점점 쓰지 않아 잊혀져가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한다. 구병모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사전을 검색할 일이 많은데, ‘도스르다’, ‘해토머리’와 같은 단어들을 보고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잦다. 오래 전 김연수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감각. 오늘날 이런 단어들을 탐색하는 작가는 내 좁은 독서 범위에선 더 이상 없는 듯하다. 사라지는 것들을 눈으로 마주했을 때의 쓸쓸함.















서리북 ‘고전의 강’ 코너를 인상 깊게 읽었다. 진화심리학 분야 대중과학서의 고전을 뜯어보며 진화심리학이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서평. 『센스 앤 넌센스』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서평이었다. 서평 도서는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24. 9. 5.















크레마를 꺼내 놓았다가 그대로 두고 퇴근하는 바람에 카페에 왔지만 읽을 책이 없다. 알라딘 이북앱으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공자의 테마를 친절로 설정한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24. 9. 9.
『아가미』 완독. '이게 이렇게 끝난다고?'라는 생각에 당황. 축축하고 때로는 동화적인, 때로는 섬세한 상황 묘사를 특유의 만연체로 건조하게 서술해 순식간에 읽게 되지만, 정작 곤의 심리를 깊게 탐구할 기회는 적다. 아가미를 가지게 된 곤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게 더 시선을 주는 이야기.

24. 9. 10.














더 늦기 전에 스캔론의 계약주의를 정리하자.

하버드대학교에서 스캔론의 제자로 수학한 히에로니미는 계약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료 중 한 명이 또 다른 동료와 울창한 숲속에서 뒤엉켜 싸우는데 서로 30미터 정도 떨어진 참호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쏘며 몇 년째 전쟁 중이라고 해보자. 심각한 교착 상태다. 둘 중 어느 한쪽에게도 유리한 상황이 아니며 앞으로도 희망은 없다. 결국 지친 나머지 휴전 협정을 맺고 둘 다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로 한다. 양쪽의 관점이 얼마나 다르든(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을 보면 그 관점이 얼마나 심하게 달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여기서 스캔론은 이렇게 제안한다. 양쪽 모두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규칙을 거부할 권한을 준 다음 규칙을 새로 만들게 한다. 모두가 규칙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라 가정하되 (둘 다 합리적이라는 전제) 한번 통과한 규칙은 다시 거부할 수 없다. 이 경우 상대를 위한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규칙으로 통과할 수 없으므로 결국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람에게 정당한 규칙을 설계한다. 모두를 하나로 묶는 사회적 기본 끈끈이를 찾는 간단하고도 우아한 방법이다. (123~124쪽)


그런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라는’ 커다란 전제가 있다. 이는 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으로 철학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여기서 확실히 정의하고 넘어가야 한다. 스캔론은 '합리적'이라는 부분을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지 않는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은 이러하다. 나와 누군가가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억누르거나 조절하는 만큼 내가 내 이익 추구를 억누르거나 조절하려 한다면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규칙을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서로의 필요를 충족해주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며, 무언가를 놓고 모두의 생각이 같지 않을 때도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는 걸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스캔론은 "사람들이 상대방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정당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바꿀 의지를 공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의 의지가 같아야 하는데 스캔론은 이 계약서에 모두가 서명하기를 바랐다. (124쪽)


그렇다고 갈등이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캔론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 역시 갈등을 마주했을 때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상황이 정당하도록 자신의 이익을 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이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팽팽함이 조성되며 모든 사람이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한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고 똑같이 중요한 상태가 된다. 이제 히에로니미가 내게 스캔론 사상을 설명하며 왜 비참하게 끝없이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예로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쪽 모두 지쳐서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욕망이 생길 때라야 모든 사람이 진퇴양난의 수렁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갖고 다른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24~125쪽)



계약주의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최소 기준을 정하기 위해 적극적일 거라는 전제 아래 모두가 동의하고 따르기로 한 기준을 설정한다. 스캔론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둘러보고는 모두가 따를만한 행동 기본값을 설정하려 한다. 스캔론 이론은 사람들이 확실히 싫어하고 동의하기 어려울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예를 들면 쇼핑 카트를 훔치거나 망가뜨려 다른 사람이 쓸 수 없게 만들거나, 결혼식에서 술에 취해 길가에 버려진 카트에 올라탄 뒤 친구 닉에게 카트를 밀어달라고 해서 인도를 엄청 빠르게 달리다 카트 밖으로 떨어져(닉도 많이 취해 제대로 미는 게 불가능한 탓에) 길바닥에 나뒹구는 행동이 있다. 따라서 쇼핑 카트 사용을 위해 제안한 저 규칙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거부될 것이다. (130~131쪽)



남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 개념 정리하기.

우분투는 스캔론의 계약주의와 같지만 한층 강화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분투는 단지 타인에게 의무를 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타인이 건강한 것이 내가 건강한 것이고 타인의 행복이 내 행복이며 타인의 관심사가 곧 내 관심사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상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학자 마이클 오니예부치 에제 Michael Onyebuchi Eze가 우분투의 특징으로 인용한 덕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대함, 나눔, 친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분투에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강조한다. 2006년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우분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어렸던 그 옛날,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한 사람이 내가 사는 마을에 당도했다. 그 사람은 음식이나 물을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다주고 보살폈다. 이것은 한 단면일뿐 우분투는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 우분투는 스스로 부유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주위 공동체도 함께 성장하도록 하고 있는가?" (137쪽)




이것은 수백 년간 남아프리카 철학의 중심 사상이었다. 하지만 서양 철학에서는 인간의 도덕적 삶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 관계에 달려있다는 계약주의 개념을 어느 정도 아웃사이더로 취급한다. 이 책에서는 르네 데카르트를 따로 다루지 않지만 서양 사상에서 가장 기본 사상 중 하나인 그 유명한 데카르트 철학의 제1명제, '코기토, 에르고 줌 Cogito, ergo sum'(앞서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원문)을 잠시 생각해보자. 이를 우분투 사상, 즉 '우리가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와 비교하면 세상에나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든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단일 의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우분투를 실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정의할 때 다른 사람의 존재를 조건으로 한다. (139쪽)


24. 9. 11.















출근길 지하철에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출퇴근길에 짬짬이 읽는 습관을 좀 들여보자. 버스-지하철-버스의 반복이지만.. 세이 쇼나곤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불확실성,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


















50년 대여는 무엇을 위한 상품일까? 50년 뒤면 나는 80대가 되는데... 그 전까지는 갖고 있으면 읽을 수 있지 않겠냐는 유혹일까? 흥미로운 책들이 보일 때마다 주머니 사정은 생각 않고 결제해버리는 나를 보며 잠시 들었던 생각.

24. 9. 12.














『교수처럼 문학 읽기』를 읽기 시작. 여행은 하나의 원정이라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 같은 것에서 시작. 하지만 그 예시로 핀천의 작품을 든 것이 흥미롭다. 원정의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 탐구자/탐구 장소/그곳에 가야 하는 표면적 이유/탐구 중 겪는 도전과 시련/그곳이 가야 하는 진짜 이유.

원정의 진정한 목적은 언제나 ‘자각’이다. (29쪽)

식사는 언제나 친교 행위communion이다. 성찬식(communion)의 의미만이 아님.



24. 9. 13.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니체 부분을 읽는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에픽테토스 읽기. 아우렐리우스에 이어서 스토아 철학, 스토아 캠프 이야기가 나온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 이해는 되지만 와닿지 않는 건 나의 나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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