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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나 봄

기나긴 여름의 빛과 바람 온갖 새들과 해충들이 다녀가더니 

감나무 열매가 노랗고 발갛게 익어가는 중이다.

길고 지루했던 장마도 있었다. 

어떤 날은 힘들어서, 어느 날은 행복해서 죽을 것 같은 

감사와 불평의 콜라보는 잊었다. 

흘러간 시간은 하루하루가 선물이고 구원일 뿐.

너무 익은 홍시는 시도 때도 없이 콘크리트 마당을 향해 다이빙을 한다.

피처럼 붉은 들짐승의 창자와 닮은 잔해들을 수거하는 일은 오로지 

나의 것이라서 어설픈 감상은 집어 던져야 한다.

아침과 저녁으로 들르던 그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 묽고 단 홍시보다 맛난 고기를 먹으러 갔던 거였다.

찰나의 의문과 성찰에도 퍽, 탁, 떨어지고 터지고 흩어지는 붉은 색으로

마당은 난장판이 그야말로 환장의 수준이다.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와의 공존은 

사계절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한 묵상이다.

어디로 갈지 몰라 길을 찾을 때 

어떻게 살지 몰라 주저앉을 때 

늘, 같은 자리에 선 감나무를 바라본다. 

11월은 오고 말았고

머지않아 마른 잎마다 서리가 내리고

언 바늘처럼 꽂히면, 우수수

높은 폭포의 물길처럼, 와르르

쏟아질 낙엽에 대한 기나긴 서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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