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없음이 고민이다.
한 때는 고민이 너무 많아 사는 게 미칠 듯 힘들더니 이제는 고민이 너무 없다.
나이듦은 생각없이 사는 걸 가르친다.
오히려 처지는 과거 보다 나빠졌다.
오래된 몸은 가만히 있어도 부식되는 중이라
틈틈이 쓸고 닦고 기름칠을 해야만 한다.
긴긴 실업으로 주머니도 곳간도 텅 빈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무난한 원인은 생각의 차이다.
언젠가부터 생각없이 살기로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적당히 덤덤하게
싫어하는 사람 덜 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소하지만 뿌듯한 재미를 찾아다니며
어지간하면 뛰지 않고 걷기
덜 화내고 덜 싸우기
그리하여, 점점 순해지는 중이다.
아니, 깃털같이 가벼워지고 있다.
마치 지상에서 한 뼘 높은 허공에 두둥 뜬 기분이랄지.
모호하다면 모호한.
그럼에도 열심히 먹고 자고 싸는
여전히 사람, 인간 인증이다.
어떤 길
어떤 끝이어도 좋다.
아무래도 좋다.
고민없음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다.
끝까지 버티고 살아보면 알아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