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와닿은 구절들을 책에 실린 역순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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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이 나라에서 시민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구제받는 길은 열리길 희망한다.
침묵의 가장 중요한 양상은, 그것이 공포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테러의 공포 앞에서 말하는 입은 닥친 입이 될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싸는 입이 될 수밖에 없는 빈난의 상황에서도, 힘든 일상은 침묵을 강제한다.
타자와 대화에 나서는 작은 책임감, 종선의 말하는 입을 쳐다보고 그의 낯선 글을 소리 내어 읽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와 현저하게 차이나는 '타자'와의 대회가 시작된다. 응답의 책임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사태는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분명하게 복지원 사태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요컨대 '수용소 군도'는 과거의 예외상태가 아닌,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상례적 현실인 것이다.
'그들'과 구별되는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욕망하고 견지함으로써, 사실은 '우리'로부터 배제된 생명에 대해 일정하게 가치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민이 된 그에게서 여전히 우리는 공포의 그늘을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여전히 수용 상태이며, 그의 선량한 웃음 뒤에는 무서운 고통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 사회를 위협하겠지만, 거꾸로 사회도 이들을 지속적으로 위협한다.
죽음은 복지원에서도, 그리고 복지원 바깥에서도 계속된다.(중략) 폐쇄 이후 사실상의 수용소 상태에서는, 죽은 것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것들도 다시 문제가 된다.
병원에서 만나 본 한종선의 누이는 당시의 기억을 말로써 제대로 옮겨 내지 못했다. 말문이 닫힌 상태였다. 기억이 삭제되다시피 했다. 그 어떤 공포의 결과, 폭력의 후유증이겠는가? 과연 그녀 혼자만의 일일까?
몰이해적 인간의 시선과 비인간적 자신의 처지 사이에 벌어진 놀라운 간격, 쉽게 넘지 못할 단절을 느끼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역사적 가치 매김은 목숨의 가치, 인간의 가치에 대한 차별적 매김을 전체하거나 수반한다.
폭력은 복지원 안에 명백하게 실재했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실행된다. 하지만 그 최종의 책임은 여전히 추상화된다. (축약. 명령을 따랐을뿐이다. 상부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시키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법대로 했을뿐이다.)
내가, 당신이 그때 그 복지원/수용소로 끌려 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각한 인권 위반의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인구의 안녕과 시민사회의 미화를 위해서는 부랑인의 배제와 구금이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보수적인 '국민' 인구의 상당수가 동의하거나 공모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의 자격에 대해, 그 깊은 집단망각과 역사망실의 질병에 관해, 회피하기 힘든 추궁의 발문을 제출한다.
부탁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는 수많은 복지원 피해자들의 이야기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9살짜리 꼬마가 이렇게 글을 써서 들어 달라고 하는 거다. 들어 주세요, 우리 얘기를 들어 주세요,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우리를 봐주세요, 하고 말이다. 부탁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또 다른 한종선에게는 또 다른 전규찬이 필요하다.
피해보상은 당연히 피해자들의 권리다. 나도 보상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중략) 복지원 사건부터 바로 잡아,다시는 이런 일이 이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런 바람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사람에서 짐승처럼 되긴 쉽다. 그렇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말로는 쉽지만 사실은 너무나 힘이 든다. 죽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지금 힘들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
복지원 사태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글로 남겼다. 하지만 아직도 내 머리 속 기억 저 너머에는 산산이 깨져버린 유리거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글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죽음에도 무슨 명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겪은 모든 것들이 그저 개죽음과도 갚이 아무 이유도 없었단 말인가?
이대로 진실을 묻어둔 채 살아야만 하는가? (축약) 그런 일들 많았지. 한 둘이어야 말이지. 그런 일들 덕분에 이 정도 발전할 수 있었지, 안그래? 이런 말들을 사람들은 서슴없이 뱉어낸다. 그러면 그만큼 발전을 이루었으면, 이제 잘못된 것에 대해 반성도 하고, 대한민국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고 혹독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 자체를 모르는 내게 세상은 세상의 법을 적용했다. 아무도 내게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