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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그리고 자유
  • 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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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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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부제로 달고 있다. 확실히 오늘날 우리는 경험을 외주 주는 삶을 살고 있다. 개인의 삶이 하루하루 너무 바빠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간접 경험이 마치 직접 경험한 것처럼 구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 연애, 이별, 이혼, 놀이, 문화 관람까지 우리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SNS를 통해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소비한다.


이미 시작된 메타버스 속의 삶


‘메타버스’라고 하면 흔히 애플의 비전 프로나 메타의 오큘러스 같은 기기를 통한 경험을 떠올리지만, 이미 우리는 각종 SNS와 플랫폼을 통해 메타버스 세상에 살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내미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미 현실과 가상 모두를 경험하고 있다.


경험 기계와 안락한 알약의 유혹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저서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경험 기계’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연결된 상태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기계에 연결된 채로 살고 싶은가? 노직은 ”우리는 어떤 것을 하는 경험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하는 것을 원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8년 연구자들이 노직의 경험 기계 실험을 재구성했을 때 결과는 달랐다. 연구자들은 노직의 침습적 기계를 부작용 없이 즐거운 경험을 약속하는 ‘경험 알약’으로 대체하면 사람들이 약을 복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개입이 덜 침습적일수록(현실과의 단절이 덜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다는 가설이 옳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적 연결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면서도,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한다. (‘스마트폰을 하다’라는 말은 표현상 어색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될 수준에 이르렀다.) 리처드 세넷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집단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오프라인에서 마주하는 사람이 아닌 스마트폰 속의 타인들과 연결되어 관계를 맺는다. 단순히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는 행위를 관계 맺기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물성적 경험의 멸종과 인간의 회복


기술은 개인의 삶을 점점 더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가 그 세상을 앞당겼을 뿐, 어차피 올 세상이었다. ‘함께 있지만 단절된 상태’ 혹은 ‘단절되어 있지만 연결된 상태’. 그 어느 쪽이라 해도 납득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의 물성과 촉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을 ‘경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경험한 것처럼 느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진짜 경험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팝업스토어나 해외 여행처럼 현장의 직접 경험을 갈구하는 수요가 큰 것을 보면, 기술에 모든 것을 외주화한 것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성적인 경험을 원한다. 다만 돈과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저자는 “인간의 미덕을 되찾고 가장 뿌리 깊은 인간의 경험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려면 기술예찬론자들이 제안하는 극단적인 변혁 프로젝트에 기꺼이 한계를 두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기발하고 모순적이며 회복력 있고 창의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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