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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의 도서관

최근 3주 동안 나에게는 내가 심지어 따라가기도 벅찬 무수한 변화들이 있었다.

자취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어가는 시점에서 급하게 새로운 집을 구해야만 했고,

이번에는 꼭 제대로 된,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찾고 싶었기에 하루의 절반을 집 구하는 시간에 쏟을 정도로 신중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게 된 나의 공간은,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서 그런지 온갖 벌레들이 사방에서 출현하여 나의 방 뿐만 아니라, 같은 층의 다른 방 세입자들도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비명을 지르곤 하였다.

한밤 중에 비명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또 벌레가 나타났구나!'

무엇보다 관리비에 난방비가 포함된 중앙 난방인 곳이었는데, 집주인께서 한겨울에 보일러를 잘 틀어주시지 않아서,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데 방 바닥이 얼음처럼 차가운 곳에서 자야만 했다. 그러고 작년 겨울을 보냈던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올해 봄이 되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나는 겨울의 혹독함을 금새 잊어버리고 다시 재계약을 했다.

그 곳에서 벗어나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어째서인지 이동할 의지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절망 안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지면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자꾸만 가라앉게 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불과 6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토록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집을 옮겨야겠다고 강력하게 마음을 먹은 계기가 바로 앞 집 세입자 분의 담배 냄새였다.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셔서 그 연기가 바로 앞인 내 방으로 다 들어왔다.

오래된 집이라 현관문 아래에 틈이 있어서 같은 층의 모든 냄새들이 방으로 다 들어오는 구조였다.

낮에는 창문 열고 환기라도 시킬 수 있다지만, 밤새도록 담배 연기가 내 방 안으로 가득 차서 정말 괴로웠다.

영하 15도에 육박하는 맹추위 속에서도 보일러 없이 어떻게든 버티었던 나였는데, 정말이지 담배 냄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흡연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방 안에서의 흡연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분이 담배를 피우시는 매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연기를 같이 들이마시게 되는 꼴이니.

집주인께 몇 번씩 말씀드려도 해결이 전혀 되지 않아, 나는 결국 방을 옮기게 되었다.

재계약을 한 상태라서 내가 부동산에 방을 내놓고 복비도 부담하고, 방이 나가기 전까지 월세도 내야한다는.

금전적 손실이 엄청난데도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살 수가 없다고 판단했고, 좋은 집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도 이제서야 생겼다.

10월 말부터 급하게 새로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꼼꼼하게 모든 조건들을 미리 확인하고 구하리라, 단단히 마음 먹었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집 구하는 일에 몰두했었다.

하지만, 좋은 조건의 집들은 부동산에 연락하면 방금 계약되었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들을 수 있었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11월 안에 집을 구하지 못할까봐 눈물까지 났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동산에 올라온 내부 사진은 조금 낡아보였지만 왠지 정이 가는 한 집을 발견했다.

실제로 집을 보러 가봐야 자세한 걸 알 수 있기에, 부동산에 곧바로 연락하여 아직 계약이 안 되었다면 집을 보러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세입자 분께서 아직 짐을 안 빼셔서 시간이 좀 걸린다는 내용의 답변을 들었다.

11월로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급하게 집을 구하면 지난번처럼 또 그렇게 안 좋은 곳에서 살게 될까봐 나는 초조한 마음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기다렸다.

그 사이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다른 집들이 나오면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부동산 공인중개사님께 말씀도 드렸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린 보람이 있는걸까.

세입자 분께서 모든 정리가 끝났고, 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부동산으로부터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보러간 날,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여기가 바로 내가 살 곳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배와 장판, 싱크대 수도 등 아직 수리가 안 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친절하신 집주인께서 집의 모든 곳을 거의 새 집 수준으로 교체해주셨다.

보통 월세는 들어갈 때 벽지와 장판을 매번 새로 교체해주시지 않는다.

나도 그것까지 바란 것은 아니라서 다른 조건들만 충족하면 조금 낡아도 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집주인께서 정말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주셔서 눈물이 날만큼 감사했다.

1년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11월 10일에 드디어 나의 두번째 공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 간 이삿짐 정리를 하고, 가구와 책상 등 여러가지를 조립하고 배치하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보다 넓은 집이라서 이번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욕심도 조금 생기게 되어, 나만의 공간으로 꾸미는 데 일주일은 걸렸다.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여, 나는 이 글을 쓰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내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실감이 났다.

집을 구하기 시작했던 3주 전부터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었고, 이사를 와서도 난생 처음 내 공간을 가꾸는 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수면 부족에 시달리다가 이제서야 잠을 깊게 청해본다.


짐 정리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16일 밤에, 주황색 조명의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았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 갇혀 있었던, 무기력했던 지난 날들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더 좋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어찌할 도리 없이 의지마저도 바닥이 났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내 스스로의 힘 만으로는 절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더 좋은 내가 되고 싶다, 더 좋은 내일을 살고 싶다. 그렇게 차츰 의지를 갖게 될 수 있었던 건 올해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많은 인연과 기적같은 사건들 덕분이다.

혼자였다면 분명 나는 빛나는 꿈을 품고 있었음에도 또 무기력하게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용기내서 내딛은 한 걸음과 그에 맞추어 나에게 다가왔던 다른 이들의 한 걸음이 만들어낸 인연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

내가 쌓아온 노력들이 아주 조금은 싹 틔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따뜻한 집에서 이제서야 겨우,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아니, 상상조차도 못했던 것이었다. 더 나아질 가능성도 나는 철저히 버렸었기 때문에.


책상에 다시 앉아,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그려보면서 행복함과 동시에 무한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스탠바이 웬디>에서 공들여 써온 소설이 공중에 다 날아가버렸을 때, 주인공 웬디가 적은 소설 속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Captain, there is only one logical direction in which to go : Forward."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 전진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웬디는 영화 스타트렉의 광팬이자, 작가가 꿈인 소녀이다.

소설 공모전에 출품할 소설을 빼곡히 적은 종이들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며 꿈마저 무너져버렸을 때, 웬디는 주저앉아 다시 소설을 써나간다.

그 장면에서 나온 영화 속의 명대사이다.

모든 것이 날아가버렸고, 무너졌음에도 역시 '전진'하는 것이 정답이라니.

얼마 전에 나는 분명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에서 몇 차례 폭풍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붉은 백일홍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글을 썼었다.

내가 몇 차례 폭풍을 겪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지금껏 내가 겪은 고통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전진'하는 것. 적어도 주어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는 전진할 것임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이것이 나에게 허락된 행복에 보답하는 길임을.


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온 지 일주일 째 되는 17일이 마침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좋은 식당을 찾고, 어머니께서 가보고 싶다는 곳을 하루 종일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춘천에 오래 머물렀으면서도 의암호, 그 멋진 호수를 제대로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

집을 구하는 여정 동안의 걱정과 눈물을 이 날에, 눈부신 호수를 바라보며 다 날려 보냈다.

흐르는 강물처럼, 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리라 다짐도 했다.

강물에 산산 조각이 나듯 흩뿌려진 금색의 태양빛은 언제나 아름답다.

잔상이 눈을 감아도 떠오를 만큼 강렬하게 남아있다.

자연은 태초에도, 최후에도 생명을 품어내는 거룩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여행 중에 직접 찍은 사진을 여기에 살며시 기록해본다.



-> 관광지로도 유명한 소양강 처녀상이다. 춘천에 계속 살았음에도 이 앞에 정면으로 마주해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다. 



->11월 중순의 추위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붉은 꽃이 예뻐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푸른 강물과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레트로한 느낌으로 사진에 담겨서 신기했다.



-> 의암호 스카이 워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마침 보트도 지나가고 있다.



->춘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호수가 보이는 그 어디든!'이라고 답하고 싶다.

특히 노을 질 때의 호수에 비친 금빛 물결은 입을 꾹 다물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이 날의 태양과 구름의 형상이 장관이었다.



-> 의암호 근처 <리버레인> 이라는 카페에 앉아서 찍은 풍경. 사진 속 인물은 어머니입니다^^



->부끄럽지만 어머니께서 찍어주신 제 사진도^^



-> 새로운 공간에서 만들어 본 간이 코타츠! 난방비를 줄여보고자 따뜻한 코타츠를 만들었는데 상판 밑에 히터가 없는 코타츠인데도 의외로 엄청 따뜻하다. 앞으로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이 포근하고 아늑한 곳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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