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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4868911님의 서재
  •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 로렌츠 바그너
  • 12,420원 (10%690)
  • 2020-05-22
  • : 470

“장애인의 권리: 장애인은 참여와 통합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남들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장애인은 사회의 일부이며 집, 특수학교, 장애인 작업장에 갇히거나 배제돼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곳에 있어야 한다. 바로 우리 곁에.”(p149) 


23년 반을 살면서 내가 자폐인을 만난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었다. 영화 ‘말아톤’이나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주인공의 모습으로만 가끔 봤을 뿐, 자폐인과 마주한 기억이 한 번도 없다. 2011년에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2.64%가 자폐증을 진단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약 100만명이 넘는 자폐인이 있는데, 왜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마주하지 못했을까? 


2006년 UN에서 발효된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참여와 통합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다. 자폐인들도 엄연한 사회의 일부이며, 사회가 수용해야 할 구성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에서 자폐인들은 특수시설과 가정에 대부분 수용될 뿐이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자폐인들을 받아줄 일자리와 학교는 부족하고, 오롯이 부모와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 마크람’은 자폐인 ‘카이’의 아버지이며, 매우 명석하고 유망한 뇌과학자이다. 하지만 아들 카이가 태어난 후로 헨리는 길을 잃는다. 자신이 아무리 유명한 뇌과학자라고 해도, 자폐증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학계에서도 자폐증에 대한 연구가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서 헨리는 연구 대상을 ‘자폐증’으로 과감하게 바꿨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자폐증의 발생 기전과 치료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다. 


“문제는 한 번도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는 연구자가 태반이라는 거야. 만나보긴 했어도 같이 살아본 적은 없을 거야.” (p127) 


헨리 마크람이 연구를 시작할 당시, 학계에서는 ‘억제성 뉴런’의 기능이상으로 인해 자폐증이 생긴다고 규명했고, 자폐증을 뇌의 결함이나 장애라고 생각했다. 억제성 뉴런이 작동하지 않아 자폐인들은 인간의 선천적인 ‘공감능력’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상호 교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학설이었다. 하지만 헨리 마크람은 이에 의구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은 분명히 타인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오로지 ‘자폐인과 함께 살아본 연구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고, ‘자폐아를 아들로 둔 부모’가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기존 학설에 대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헨리 마크람과 박사과정생 ‘타니아’는 아주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자폐증은 억제성 뉴런의 기능 장애가 아닌, ‘활성세포’의 과도한 항진과 연결로 인해 생긴다는 것이었다! 즉, 자폐증은 뇌가 둔화되어 생긴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생겼다는 것이다. 자폐인들은 모든 자극을 일반인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이고, 편도체에 과도한 감정, 정서, 기억이 생성한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는 세상은 자폐인들에게 너무도 많은 자극과 공포였기 때문에, 그들은 움츠러들고 숨었던 것이다. 

헨리의 발견 이전에는 대다수의 자폐증 치료법이 뇌를 ‘자극’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헨리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치료법은 오히려 자폐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미 과도한 자극을 받아 예민해진 뇌를 더 자극시킨다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헨리는 새로운 자폐증 치료로써 뇌를 안정시키는 약물과,  환경적 자극을 제거하는 방법 제시했다. 더 나아가 이런 연구 결과와 치료법을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하고, 자신과 같은 자폐인 가족을 위해 배포했다.  


헨리 마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선택된 자연> 속 이우재 교수님이 언급했던 ‘과학적 인본주의’를 떠올렸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결국 ‘사회 속’에서 기능해야 하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쓰여야 한다. 헨리 마크람은 자폐아들을 둔 뇌과학자였기 때문에 실제 환자와 동 떨어져있던 뇌과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발견은 수 많은 자폐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세상을 바꿨다. 헨리 마크람은 과학적 인본주의를 실현한 뇌과학자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미래의 한의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유능함’은 헨리 마크람이 그랬듯, 환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게 아닐까? 항상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생활에 공감하는 의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과학적 인본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지. 현실과 동떨어진 의학 지식은 쓸모 없다. 남은 본과생활 동안, 실제 환자들을 치료하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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